마음이 급해진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여지없이 연말연시 분위기이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린다는 산삼(山蔘)같은 시(詩)는 어디에 숨어 있나. 새해 결심(New Year Resolution)을 ‘시 읽는 2022년’으로 정했다. 팬데믹 시대에 한 편의 좋은 시는 부스터 백신이 되지 않을까? 코로나19 집콕에서 쌓인 정신피로에 시는 좋은 힐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의 손을 잡고 시인과 함께 숨 쉬는 임인년 새해를 만들어 가기로했다.
긴긴 겨울밤 심마니가 산삼 찾듯 ‘산삼같은 시’를 찾아 읽고 턱 빠지게 웃으면서 코로나19의 오미크론을 한방에 날려 보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좋은 시를 발견하는 것은 마치 천 년 된 산삼을 발견하는 것처럼 진귀하고 어렵다고 한다. 천 년 산삼이 죽어가는 인간의 육체를 살린다면 좋은 시는 죽어가는 영혼을 다시 살리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시는 옛날에 한국인들이 병이 나면 끓여서 삼베보자기로 짜서 마셨던 약초와 같다. 시인은 불모(不毛)의 땅에 약초(藥草)를 심는 치료사(Healer)와 같다. 시는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슬프게 해주고 또 아름답게 해준다. 본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시다.
엄동설한의 기나긴 밤, 잠도 잘 오지 않고 추워서 밖에 나가 별똥 구경도 할 수 없다. 침대 위에 누워 눈만 감고 있는 시간이 많다. 이럴 때 혹한을 녹이는 시, 영혼을 살린다는 시 감상으로 기분전환을 해보고 싶다.
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시어(詩語)라고 한다. 시인이 일상 언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한 언어이다. 하나의 단어가 은유(metaphor)를 배태(胚胎)하여 시의 중심점(central point)이 되는 언어이다.
시란 어려운 분야이지만, 고상하고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멋진 시어를 찾기위해 사전을 넘기거나, 옥편을 뒤지거나,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이 가장 좋은 시어라고 한다. 그래서 저질스럽다고 회피하는 육두문자(肉頭文字)나 음담패설(淫談悖說)도 시인의 ‘언어 연금술(鍊金術)’을 통해 얼마든지 멋진 시어가 될 수 있다. 시어가 없는 시는 시처럼 썼어도 산문(散文)이 된다. 어려운 말을 어렵게 하기는 쉽고, 어려운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쉬운 말을 어렵게 만들 뿐, 말이란 본래 쉬운 것 아닌가?
답답하고 허전할 때 시집에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본다. 한 줌의 위로의 시어(詩語)가 손을 타고 눈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올 것 같다. 살아 가는데 훈훈한 치유의 벗이 될 것 같다. 잠시 시를 읽고 쉬면서 쉴틈 없는 뇌(腦)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명시를 통해 감성을 가꾸고 뇌를 활성화시켜 힐링도 하고 품격 있는 문화도 만들어 가고 싶다. 앞만 보며 사는 생활에서 시를 통해 내 자신을 뒤돌아도 보고, 되풀이되고 무미건조한 코로나19 인형의 집 생활에서 활력을 찾고 새 기운도 얻고 싶다.
삶이 힘들 때 되뇌이는 시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라고 읊은 구상의 ‘꽃자리’를 종종 찾아 읽을거다. 일편단심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백발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읊은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을 때때로 찾아 읽을거다. 젊어서 혈색 좋은 홍안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들어 늙어가면서 희어지는 백발도 사랑한다니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사랑인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읊은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무지개’ 명시를 엄마 아빠가 함께 가족 앞에서 낭송하여 스위트 홈의 명장면을 만든다면 얼마나 멋 있을까?
온가족이 소파에 앉아 80세 할머니가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고, 85세 할아버지가 김소월의 ‘진달래’ 시를 낭송하고, 온가족이 모여 시 읽고 낭송하는 품격있는 가족문화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시어(詩語)의 체취(體臭)가 되어 가족의 마음이 함께 흔들리지 않을까?
한국에서 요직을 지낸 어떤 분은 가족이 함께 모여 애국가를 4절까지 합창한다고 TV에 나와 자랑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주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시 읽고 낭송하는 아름답고 멋진 가족애를 자랑하는 광경도 보고 싶다.
2021년 마지막 밤에는 “병든 수캐처럼 헐떡대온 스무 세 해, 아… 그 8할(割)이 바람이었거늘!" 이라고 읊은 서정주의 ‘자화상(自畵像)’을 읽으면서 송구영신 할 것이다. 2022년 검은 호랑이가 내려오는 새해에는 열정을 바쳐 최선을 다해 메마른 가슴을 단비처럼 촉촉히 적셔주는 명시를 찾아 검은 호랑이와 함께 읽고 즐기면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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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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