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가 만난사람11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 홀로 길 청소하던 국회의원
레이번 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앤디 김씨는 39세의 젊은 의원답게 에너지 넘치면서 친숙한 모습이었다. 그는 권위보다 민생의 지팡이란 모습을 실천해 보인 인물이다. 지난 1월 폭도들이국회의사당에 쓰나미 같이 돌입하여 국회를 난도질 하고 떠난 후 김 의원 홀로 조용히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청소하는 모습이 뉴스 카메라에 잡혔다.
양복 차림의 의원이 누구에게 지시하기보다 몸소 실천하는 그의 모습에서 수많은 미국 시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날 그가 입었던 양복은 지금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한인 DNA인 능동성과 진정성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폭도들과 거리 쓰레기들을 묵묵히 치우는 의원의 몽타주가 자유 민주주의의 취약점과 공화 정치의 위대함을 동시에 대변하는 듯했다. 그의 국회 사무실 게시판에 보니 시민 청원 해결 건수 4,300이라 쓰여 있다.
김 의원(뉴저지 3지역구) 사무실 벽에 걸린 지역구 지도를 유심히 보니 포트 딕스(Ft. Dix) 육군 훈련소 막사 사진들이 보였는데 그 군 기지는 내가 1977년 군대 기초 훈련을 받았던 장소다. 한국 남자들 모이면 논산 훈련소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김 의원과의 첫 대화가 추억 어린 Ft. Dix 군 훈련소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근무시절
무명의 36살 젊은 나이에 강력한 현역 공화당 의원을 단 1% 차이로 꺾고 국회에 입성한 그는 이미 최연소 승리자라는 타이틀 외에 최초 한국계 민주당 의원인 동시에 당시 유일한 한국계 의원이어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국회의원의 꿈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9-11”이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그의 꿈은 외교관이었지만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내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에서 일하면서 ‘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생소한 나라가 미국을 공격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주재대사와 주둔군 사령관 곁에서 활동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정책과 확고한 리더십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실천 가능한 곳이 국회라는 점을 인지하고 정치에 뜻을 두게 되었다. 현재 국방위(Armed Service)와 중소기업위(Small Business)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그가 추진해서 통과시킨 중요 정책 중 하나가 노인들과 빈곤층을 위한 ‘처방약 비용 절감 법안(SAVEACT)’이며 ‘국회의원 봉급 동결안’을 추진하여 입법화했고 경찰관들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되자 곧바로 ‘모범 경찰법(Justice Policing)’을 추진해서 통과시켰다.
# 평범한 학생에서 로드 스칼라까지
군인에게는 최고 무공훈장이, 과학자에게는 노벨상이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로드 스칼라십(Rhodes Scholarship)이 있다. 꽃 중에 꽃, 로드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 외교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에게 교육에 관해 물었다.
그는 평범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고 답했지만 평범한 부모와는 거리가 있었다. 우선 부친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굴하지 않고 미국에서 노력하여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과학자다. 모친 역시 천신만고 끝에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는 맞벌이 부부로 열심히 자녀들을 가르쳤다.
보스턴에서 뉴저지로 이사한 후 그를 공립학교 보냈고 당시 학교 성적을 묻자 만면에 웃음을 지며 고등학교 시절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자평했다. 중추적 순간(pivotal moment)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단과 대학생활에서부터 학업에 대한 열정이 점차적으로 불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 재학생 29명뿐인 단과대학 진학
그는 ‘Deep Spring College’에서 시작하여 시카고 대학으로 편입해서 그곳에서 학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Deep Spring College라는 대학 이름이 생소한 이유는 앤디 김 의원 이외에는 별반 유명한 졸업생이 없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오지 산골에 소재한 대학은 재학생 29명에 교수 7명뿐인 극소수의 단과 대학이다.
특이한 점은 학생 전원이 전액 장학생이며 일주일에 20시간을 농장(Ranch)에서 노동 해야 하며 2018년도까지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도시를 높은 산을 넘어 2시간 이상 운전해 가야 하는 관계로 기숙사 방에서 자연스럽게 책 읽고 공부했다고 한다. 외지에서 외로이 형설지공을 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재학생 29명인 단과 대에서 옥스퍼드 대학 박사학위까지… 그는 이제야 재선 의원이고 불혹의 나이에도 이르지 못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 한인 최초 연방 상원의원 자리에 올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앞으로의 꿈을 물어 보았다. 그는 모든 시민들을 위한 의원이 되는 것이 현재의 꿈이라고 답했다. 그의 지역구 유권자는 85%가 백인이며 아시안은 4%에도 못 미친다. 지난 두 번의 대선 선거에서 지역구는 압도적으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던 지역이고 민주당 김 의원이 무너트린 공화당 의원은 대놓고 그를 “Wonton pond”에 있는 “Real Fishy”한 인물이라며 원색적인 인종차별 선거를 했다.
# 한미동맹은 선택 아닌 필수
국방위 위원이기에 한미 동맹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누가 청와대에 입성하더라도 한미 자유무역과 한미 경제발전 그리고 역동적(Robust)인 문화교류 모두 굳건한 한미동맹 아래 양국의 국가 안전과 평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무실에는 뉴저지 소재 한식당에서 찍은 사진과 공고히 서있는 성조기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워싱턴 모뉴먼트와 링컨 메모리얼이 아련히 보였다. 언제인가 우리에게도 저들 같은 지도자들이 나오겠지 하는 바람이 가슴에 이는 순간 김 의원의 밝은 표정이 다시 포커스 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우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의 꿈을 묻기보다 우리 스스로 꿈을 실현시켜야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어느덧 작별의 시간, 그는 한인 모두에게 성탄의 축복과 새해 인사로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떠나는 나에게 굳게 악수를 교환하는 손길에서 따스한 온기가 통했다. 독자 분 가정에 김 의원의 기원이 가득 하시길 바란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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