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마음을 전하는 낙엽 친구의 서사시를 들으며, 산책 길 한바퀴를 돌고 왔다. 갈색 가을이 찾아 올 때면 시려지는 마음, 샛 노란 은행나무 잎 수북히 쌓인 가을 숲 속으로 사라져 간 레인 에번스 의원의 뒷 모습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머언 길을. ‘세월여유수 진즉불환’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더니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가슴 속에 언제나 살아 있는 것같다. 11월 5일은 레인이 이 세상을 떠난지가 일곱 해가 되는 날이다. 5주년 되던, 2019년, 여름에는 그의 동상을 서울 외교 안보 연구원내에 설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보람스러웠다. 그리고 그 해, 11월, 기일에는 메릴랜드, 우리 집에서 조촐하게 5주년 추모 예배도 드렸다. 워싱턴 대사관, 송 참사관께서 고맙게 레인이 발의해서 외교 분과위원회를 만장 일치로 통과한 H.Res. 759 의 기념패를 증정해 주시는 기념 식순도 가졌다.
나는 아직도 그가 생전 입었던 옷을 그대로 옷장에 고스란히 걸어 놓은 채 산다. 그의 숨결이 묻어있는 것같고 그가 반드시 살아서 내 곁에 돌아 오리라는 포기히지 않으려던 기다림이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는데 육신의 병으로 허물어져 가는 그를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돌봐 주고, 지켜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아쉬움이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 져있다. 적막하게 펼쳐진 가을 하늘 너머로 그를 그리며 약자의 영웅, 그리고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의 워싱턴 D.C., 의사당 근처에 있던 집은 아담스러웠다. 그런데 일리노이주, Rock Island 고향에 사는 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 놀랐다. 오래 되고, 허름한 집, 부모에게 돈주고 샀다는 집의 2층, 삼각형 다락방, 일어서려면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고 드러누우면 두 발을 제대로 펼 수가 없는 방이다. 어떻게 이 방에서 묵냐고 물었더니 그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소년 시절, 부모에게 이 방을 물려 받았을 때에 얼마나 행복했던지 하며 만족해 한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후에도 그의 마음은 늘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화려하고 위대한 박수 갈채가 아닌 이 허술한 다락방에. 처음 그를 알게 되었을 때에 그는 집 주인이면서도 다른 방들은 동생, 조카에게 내주고, 습한 지하실을 거실로 쓰고 있었다. 몸도 않좋은 사람이. 울화가 난 내가 전화로 그나마 강권하다시피 하여 위로 올라오게 한 것이 고작 다락방이었다. 그는 언제나 더 좋은 것을 남에게 주고 양보했다. DC. 집에도 환자용 큰 방은 20대 젊은 조카에게 주고 본인은 불편한 작은 방으로 옮겼다. 물론 내가 잠시 부재 중인 틈을 타서 생긴 일이다. 나도 저렇게 욕심이 없었으면, 어쩌면 나하고 정반대일까 싶다. 내가 지난 해에 결심 했던 ‘비우고 버린다는 것'에 대하여. 그런데 그동안 책 몇 권만 재활용 박스에 집어넣은 것외에는 버린 것이 하나도 없다. 레인의 다락방 마음을 품고 살아야 겠다. 약한 마음을 버리고, 버리는 용기를 갖자.
요즘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코로나 재앙으로 인해 여유 없어지고 강퍅해짐을 느낀다. 어두움 가운데 지구의 재앙, 혼돈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스위팅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4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3일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수 있다고. 그러나 희망 없이는 단 3초도 살 수 없다”고 했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않게 하듯이 우리 삶에도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있는 희망이 있단다.
걱정을 많이하는 성격인 나에게 에번스 의원이 라이너 마리야 릴케의,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루, 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 나가라”고 했다. 이 모든 일에 언젠가 해답이 있겠지하며 그가 불러주던 ‘Let it be!’ 노래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도 끝에 가서 남는 것은 ‘나' 라고 했다. 오늘 하루가 내 작은 인생이다. 이해못하던 슬픔을 떠나보내고, 나머지 삶은 3퍼센트의 바다 소금이 되고, 작은 희망이 되고싶다. 그의 작은 다락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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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 한미국가조찬기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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