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코비드 백신 부스터샷 접종을 받기 위해 집 근처의 슈퍼마켓에 있는 약국으로 갔다. 미리 등록을 하고 약속을 잡았지만 좀 기다려야 했다. 대기실에는 코비드 뿐 아니라 독감 백신 접종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건너편에는 40대 나이로 들어 보이는 백인 아버지가 어린 딸 셋을 데리고 기다리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기실이 크지 않은 만큼 듣지 않으려고 해도 대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큰 딸이 고등학생인 것 같았는데 이제 운전 면허 취득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과거에 일본에 살았던 얘기들도 하는 것이 들렸다. 일본에 살던 얘기가 오가던 중에 큰 딸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내가 아시안인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듯했다. 어,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별로 나쁜 얘기도 없었는데 그렇게 조심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약간은 어색했다. 그래서 내가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주제 넘는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이제 자녀들 가운데 처음으로 운전 면허 취득자가 나오는 건가요? 축하 드립니다. 저희 집 애들이 고등학교 때 운전 면허 취득하던 게 생각나네요. 요즈음도 부모들이 약 40시간 정도 운전 연습을 시켜야죠? 저도 저희집 애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 토요일 이른 시간에 고등학교 주차장에서 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 때 똑바로 후진을 해 보라고 했었는데. 따님이 평행주차를 잘 하나요? 아,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구요?
그런데 면허 취득 후 보험료 인상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이 올라갈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도 이젠 그게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네요. 몇 년 전까지만해도 대학원에 다니는 우리 집 둘째가 제 보험에 올라가 있었는데, 아니 어느 해 보험계약 갱신 때부터는 제 보험료가 둘째 애 보험료보다 더 높아졌다고 하지 않겠어요? 즉, 제 나이가 이제는 사고날 가능성이 아들보다 더 높은 나이가 되었다고 하는 거죠. 그 말이 적어도 약간은 충격적이었는데 애써 태연한 척했죠. 하하.
그런데 말이에요. 저희 집 큰 애가 처음 차 사고를 낸 게 어디에서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다른 데도 아니고 바로 저희 집 드라이브웨이였어요. 못 믿겠죠? 면허 취득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저녁에 잠깐 나갔다 올 데가 있다고 하는 거에요. 저녁 시간이니까 조심해 다녀오라고 했죠. 그런데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 온 겁니다. 그래서 벌써 다녀왔냐고 물어보았죠. 큰 애가 머뭇거리더니만 드라이브웨이에서 차를 후진하며 빼다가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긁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산지 얼마 안 되는 엄마의 새 차를!
그런데 그것을 듣는 순간 화 보다는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아니,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똑바로 후진을 못했나! 큰 애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누구나 사고를 낼 수 있고.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사고도 크지 않았고. 아무도 안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이냐. 차는 수리하면 되지.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좀 더 조심하면 돼. 아빠도 고등학교 때 면허 취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내 보았어. 괜찮아!”
이미 실수한 것을 두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을, 특히 본인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잘 알 만한 일로 야단치거나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런 일로 감정 소모를 할 게 아니다.
그런 잘못이 언행에 있든지 아니면 공부를 소홀히 해 성적이 잘 안 나올 경우이든지 본인이 가장 힘들 것이다. 거기에 부모가 더 힘들 게 할 필요 없다. 오히려 위로해 주고 격려로 감싸 주자. 물론 무조건 방임하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꼭 벌을 주거나 목소리를 높이는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정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젊은 백인 아버지에게 내가 ‘꼰대’ 흉내 한 번 신나게 연출해 보았다. 그 사람 앞으로 나 보면 피해 다니겠다. 하하!
<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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