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무상하다, 어느덧 60이 훌쩍 넘어 언제 은퇴해도 상관없는 나이가 되었다. 목회자가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수 십 년이 훌쩍 지났다.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한국 포함 그 어디에서 보다도 북가주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이젠 나도 북가주 토박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84년도 이 지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산호세는 살기 좋은 전원 도시 정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교외였다. 지금의 실리콘 밸리, 세계의 두뇌 역할을 하던 때가 아니었다. 처음 북가주에 와서 밀피타스에 살고 있는데 재미있는 농담을 잘하시는 부동산업 하시는 장로님이 나에게 대뜸 “밀피타스 같이 쓰레기장 냄새나고 해금 냄새나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 그쪽 이스트 베이 쪽은 지진대야. 사람 살 곳이 못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곳이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그때 냄새가 났으면 지금도 날 것이고, 그 때 지진대였으면 지금도 지진대일 텐데 지금은 아무도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이 다니시던 말죽거리 근방에 있던 교회는 지금은 대한민국의 가장 부자들이 사는 곳으로 천지개벽이 되었다. 젊은 여자 전도사님이 개척한 교회, 제대로 배운 분이라고는 어머님과 어떤 권사님 밖에 안 계셔 그 두 인텔리(?) 들이 교회 재정과 사무를 다 보던 가난한 교회, 그래도 매일 저녁 민족을 위해 철야 기도한다고 “주여 이 민족을 구해주소서.” 눈물로 기도하던 교회, 나는 왠지 그곳이 좋았다. 물 국수에 겉절이 얹어주는 식사 자리가 좋았고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리는 그 자리가 좋았다. 어머니는 무슨 죄가 그렇게 많으신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를 부르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몇 해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50여 년 만에 그 교회를 방문했다.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그 교회를 다니지 않아 내가 가족을 대표해서 장례식 치러 주신 고마움을 전하는 자로 가게 된 것이었다. 90이 다 되신 그 여자 목사님은 까랑까랑한 목소리 쪽진 머리 한복이 어쩌면 50년 전과 다름이 없다. 성도 수 200여 명, 성도 수도 별로 늘지 않았다. 그제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뀌어도 똑같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문조차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때도 흰 저고리 검은 치마 입고 안내했는데 지금도 흰 저고리 검은 치마 입은 여자 집사님이 나를 환영해 준다. 외할아버님과 어머님의 흔적이 있던 그 교회는 여전한데 그 주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로 바뀌었다. 다 변해도 이 교회는 그대로구나. 나는 그곳에서 예배를 참석하고 점심으로 주시는 물 국수를 먹으며 50여 년 전을 회상했다.
세상이 바뀌는 것 같지만 의외로 바뀌지 않는 곳이 많다. 사람이 변한다 해도 변치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오늘 주일 예배 마치고 오랜만에 옛날에 가던 설렁탕집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오늘 밤 원고를 쓰려면 배가 든든해야 하니까. 또 하루 종일 사모 노릇하느라 지친 아내를 편하게 해줄 겸. 그곳에 사람이 북적였다. 내가 오랜만에 와서 당연히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한 웨이트레스가 “목사님, 음식이 늦어 죄송해요.” 하며 주문한 음식을 놓는다. 도대체 여기 자주 올 때가 언제였지? 10년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세월이 무상하고 강산은 10년이면 변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온고지신”이다. 옛 것과 새 것을 동시에 알라는 말이다. 모두 새 것만 좋아하는 세대지만 나는 옛 것이 좋다. 차도 오래된 정겨운 차가 좋고 음식도 구수한 청국장이나 묵은지가 좋다. 친구도 옛날 친구가 좋고 살던 곳도 고향이 좋다. 나는 은퇴하면 그리운 고국에 가고 싶은데 아내는 새 것을 더 좋아하며 미국을 더 좋아한다. 나는 “온고”하고 아내는 “지신”한다. 세상이 변해도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종교를 떠나 그 말씀을 진지하게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니까. 그러다 마음이 끌리면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어 보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알게 될 테니까.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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