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인생의 끝을 조금씩 인식해가고 있어서인지 혹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포장하는 차원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입버릇처럼 내 사후엔 자그마한 나무 아래 나의 뼛가루를 묻고 싶다 말했다. 죽음이라는 존엄한 단어, 그 단어가 주는 세상의 끝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사후를 포장하기엔 수목장이 그만이라 생각했다. 죽음 이후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세상에 나왔다 소멸되어 버리는 한 점 먼지일지라도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수목장은 안성맞춤이리라.
아침 햇살을 아직 머금고 있는 걸까? 흐릿한 해가 산 중턱을 넘지도 못하고 비가 올까 말까 하는 구름에 끼어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은 게 한껏 수분을 머금고 축축이 젖어있다. 소리 없이 산에 내려앉은 몽글몽글한 안개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회색 마음을 들게 하는 건 자연의 소리를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첫 입구의 모습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둥글한 소나무도 미국 소나무에 비해 키가 반밖에 되지 않고 팬지나 수국, 들꽃조차도 아담한 키로 형형색색 장식하고 있었다. 중간에 눈에 띄게 키가 큰 미국 수국이 나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모습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조그만 오솔길을 걷다 보니 크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계곡도 있고 조각보처럼 깔아놓은 꽃밭의 알록달록한 향연이 춤을 추게 만들었다. 어릴 때 보았던 사루비아 꽃도 있고 흔하디 흔한 들꽃마다 제각각 이름이 붙여져 있고 은빛으로 눈을 뿌려놓은 듯한 반짝이는 나무까지 춤추는 삼매경에 빠져 살짝 언덕을 넘으며 푯말도 없는 숨어 있는 작은 길에 들어섰는데….
지나쳤다면 다시 보지 못했을 고즈넉하면서 웅장한 한옥을 만나게 되었다. 분명 그 당시엔 사람 이름이 쓰인 문패가 떡하니 대문에 걸려 있었을 텐데 이 집은 대감집이란다. 일단 대문 앞에 서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면 금방이라도 “예이~~"하며 문을 지키고 있던 하인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방문객을 받아줄 거 같은 그런 육중하면서 고풍스러운 문이다. 거기에 담쟁이가 켜켜이 세월을 감고 올라가 한 이삼백 년의 잔 때가 쌓여 크고 작게 그리고 진하고 푸른색들로 각각의 모습을 제각각 늘어지고 비틀어지며 어우러져 있다. 시간이 한 오백 년 뒤로 흘러 내가 그 대문에 서서 담쟁이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착각을 들게 했다.
멋을 내지 않아도 세월이 주는 시간이 묻혀지고 묻혀져 지금 이 시간 따위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는 정지화면이 바로 대청마루에서 산마루를 보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옆으로 길게 잘린 직사각형 프레임 안에 모든 자연이 들어있는 그 모습을 그 대감은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설계했을까? 계획되지 않은 자연의 변화와 그 자연과 어우러지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과의 공존이다. 그 어우러짐에서 흔적을 느끼며 감동하고 공감한다.
앙큼한 여인네의 날렵한 뒷태가 왜 연상되는지 뒷방을 보러 돌아선 뒷마당의 붉은 물고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뒷산에서 뒷마당까지 흘러 내려오는 물이 작은 웅덩이진 돌에 갇히고 까슬한 돌 안에서 물놀이 하는 올챙이와 두툼한 연꽃들의 어울림이 이상야릇한 대감과 여인네의 눈빛이 교차 되는 듯 출렁였다.
대감집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니 해가 산등성을 타고 넘어가고 있다. 아직은 해의 빛이 조금은 아쉬운지 살짝살짝 낯빛으로 길과 꽃 그리고 나무 그리고 계곡을 노랗게 물들인다. 계곡을 타고 넘나드는 물소리는 조금씩 밤기운을 맞이하려는지 밤의 제왕답게 산속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돌무덤과 마주했다. 계곡마다 쌓아놓은 돌무덤이 크고 작게 각자의 소망을 각자의 돌로 쌓고 빌고 쌓고 빌고를 반복했으리라 생각되니 그 돌의 소망만큼이나 돌의 무게가 느껴지니 내 마음이 무거운 돌이 되었다. 내려가는 길이 다시 올라가는 길처럼 무거운 돌을 마음에 안고 간다. 아주 작은 돌 하나가 커다란 돌 위에 올라앉아 위태하게 소망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여간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하…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내가 원함을 얹어 놓는다는 건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걸 그깟 작은 돌멩이가 알려준다.
바람이 불어 돌무덤이 무너지면 내 소망이 무너질까 두려워지고 내 뼛가루가 뿌려진 꽃나무가 바람에 쓰러지면 내 사후의 자손에 해가 될까 두려워질 것이다. 수목장으로 내 사후를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다. 산에 들에 나의 흔적을 얹지 않고 흩뿌려져 자유로운 영혼이 되길 소망해 본다. 다음엔 아침에 보는 돌무덤이 저녁보다는 덜 힘들어 보일는지 봐야겠고 대감집을 드나드는 하인 집 여인네의 흙담 속 비밀도 엿보아야 되겠다. 가평에는 ‘아침 고요 수목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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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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