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고원지역에 티베트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는 종교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두 가지 요소들이 있다. 하나는 순례이다. 저들은 정화과정을 위해 3걸음마다 한번씩 순례목적지를 향해 온 몸을 땅에 던지듯 납짝 엎드려 사지와 이마를 땅에 대어 절하며 하루 6-8킬로 미터를 진행한다. 그들에게는 야크 가죽 앞치마와 손바닥 나무판이 몸을 의지할 전부다. 순례기간 동안 거센 비와 눈보라가 몰아치고, 벚꽃이 휘날리며, 해빙기 낙석에 아찔한 순간도 있다. 또한 순례 길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다른 순례자들과 먹거리를 나누며 바닥난 경비는 공사장과 일용직 일들로 메운다. 이러기를 수개월, 그들은 성지인 라싸의 조캉사원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무려 10만번 절한다. 가히 생명을 건 순례이다. 경건요소의 또 다른 하나는 조장이다. 저들은 친지들의 죽은 몸을 조각내 새들에게 보시하는데 이를 조장이라 한다. 그들은 순례시 꼭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도로 소지하며 죽은 후에도 사체까지 내려놓는다. 물론 그들은 기독자들이 아니기에 순례와 조장이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키진 못하지만 그들의 종교생활은 진지하지 그지없다.
요즘 기독자들의 신앙생활의 실체는 어떠한지... 열성적인 신앙인들은 코비 팬데믹 동안에도 매주일 성수하여 예배드리고 십일조 헌금하고 또한 선교여행도 가며 교회 일, 선행, 구제 등에 꾸준히 참여한다. 불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음을 간증한다. 이 정도라면 참으로 높은 믿음 수준이다. 반면에 늘 초보에 머무는 자들도 꽤 있다. 초보자들은 현재상황에 만족하며 더 자라가길 원치 않는다. 헌데 열성적인 신앙인들 중에는 믿음의 열정 못지 않은 또 다른 열정도 있다. 볼 것, 먹을 것, 놀 것, 즐길 것들에의 열정이다. 현대사회는 이런 것들을 계발하고 상품화한다. 이들은 이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유행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잘 먹고 잘 보고 잘 놀고 잘 즐기면서도 잘 믿는(?) 듯하다.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육체의 건강과 정신, 정서의 함양을 위해 우리는 주님이 만드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향유하며 즐길 수 있다. 나에게도 여유가 주어지면 한번 가보고픈 곳이 있다. 노르웨에 북쪽 극지점의 오로라 현상을 경험하고 싶다.
헌데 문제는 이것들이 성숙한 믿음생활에 장애요소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에 열성이란 말을 사용할 정도로 지나치다면 말이다. 즐기고 싶은 것들을 다 즐기면서 바로 믿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고 은사이다. 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확실하게 즐기면서 동시에 확실하게 믿는 것, 그것은 절대 못한다. 언젠가 모국 방문시 주의 일에 일시 손을 놓고 지인들과 여기저기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참 재미있었는데 그후 미국에 귀임했을 때 영성생활과 교회 사역에 일시 맥이 끊겨 그것을 정상 회복하느라 적잖게 힘들었다. 그게 내 능력의 한계이다. 한가지를 제대로 하려면 다른 것을 지나치게 하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
아무리 멋있고 흥겨운 것이어도 믿음생활에 장애가 된다면 어떤 이유, 명분을 내세워도 그것은 가치있고 좋은 게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줄이거나 내려놓아야 마땅하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래로 과거의 모든 가치들을 분토처럼 버렸다. 제대로 믿기 위해서였다. 다방면에서 유력자였던 천하의 바울도 세상 것들과 겸해서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예술을 우상과 왕으로 만든 이 미친 열정으로부터 예술이 짊어진 무거운 오류를 배웠다. 사람의 욕구에서 생겨난 무서운 불행...세상의 부질없는 것에 몰두하느라고 나는 하나님을 묵상하도록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 이는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의 회한에 찬 고백이다.
알게 모르게 세상 것들에 마음을 주면서 동시에 천성향한 순례 길을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신앙일까? 이런 신앙인을 보시면서 주님께서는 과연 무엇이라 하실지, 꾸짖으실까 아니면 격려하실까? 언젠가 T.V.로 방영되어 울림을 주었던 티베트 종교인들의 경건하고도 진지한 순례 행진 모습이 간혹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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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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