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누구 옆에 앉고 싶냐고 묻는다면 무슨 이름이 나올지 나는 다 안다. 예수와 부처와 마호메트와… 결국 우리가 아는 비할 데 없는 영웅들이 다 모일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프로이트와 뉴턴, 플라톤과 짐 모리슨, 셰익스피어와 호찌민 … 내가 만약 그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내 옆자리에 예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당장 다른 친구와 바꿔 달라고 말할 것이다. 누가 오른쪽 뺨을 칠 때 왼뺨을 내준 적 없는 마음으로는 그의 세상에 들어가 사랑이 필요하다고 간구할 수 없어서. 아무래도 내가 독사의 자식 같아서. 솔직히 예수가 웃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를 재미있게 해줄 자신도 없다. 어떡해서든 멋있어 보이려고 언어 인플레이션만 날리다가 수습도 못 할걸.
테레사 수녀 옆에 앉고는 싶지만 위대한 도덕의 아이콘 옆에 있다 보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술이 들어가 약간 난잡해진 마음에 다른 사람을 씹기라도 하면 그분은 익히 알려진 냉담함으로 나를 멸시하겠지. 팬케이크를 한 개 먹을까 세 개 먹을까 고민하는데 “너 지금 내 얘기 안 듣고 먹는 생각만 하지?” 엄숙하게 핀잔하면 바로 체할 것이다.
자리가 파한 뒤에 사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남들 흉보는 얘기가 아니라 나만 느끼는 불완전함이었다고 얘기한들 그분은 이미 콜카타로 돌아가셨을걸. 그렇다고 시무룩해져서 가망 없이 입을 닫고 있으면 그분도 나에게 저기 간장 병 좀 갖다 달라는 것 말고 달리 뭘 더 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 옆에 앉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저녁을 보낼 것 같지만 불안도 못지않다. 모차르트가 자기 아빠에게 “비엔나의 귀족들, 특히 황제는 내가 오로지 비엔나를 위해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상상해선 안 될 거예요” 하고 훈계조의 편지를 썼을 때처럼 못 봐 줄 우쭐거림으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여러분들 기쁘게 해주려고 여기 온 줄 알아요?” 그럴까 봐. 오만이 편집증으로 변한 어느 날 “의심할 것도 없이 여기 파리에도 나의 적들이 있다. 도대체 그런 자들이 없는 데가 어딜까?” 하고 썼듯이 거기 앉은 이들을 다 적으로 여길까 봐.
어쩌면 모차르트가 생각보다 어두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 어떤 편지에서 한두 번 공허한 감정을 묘사하고 우울증 증세도 보이지만, 그런 정서는 삶이 예고도 없이 일찍 끝나버리는 세상에 흔히 나타나는 것일 뿐. 그가 늘 돈 때문에 힘들어 하고, 요구도 많은 데다 악보까지 불태운 아내를 보고 싶다고 쓴 걸 보면 우리가 아는 모차르트는 전부 남들의 과잉 해석 같다. 사실 그는 신동이나 고통 받는 추방자가 아니라 야망 속에서 죽도록 일한 작곡가이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영원히 헤맨 청년 같은데. 아무튼 그의 음악을 음표 하나 빠뜨리지 않고 들은 것도 아니지만, 그 시간을 위해 미뉴에트를 하나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옆에 앉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리가 너무 심각할 것 같으면 안전한 사람을 찾는 게 상책이다. 같이 있는 시간을 대화의 파라다이스로 바꾸어줄 사람. 끝없는 이야기로 일말의 진공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럼 답이 나왔다. 찰스 디킨스.
디킨스는 사실 성격도 거만한 데다 잔인한 남편에 독재자 아버지였지만 그 자리의 누가 그걸 신경이나 쓸까? 허영심 많은 그 작가는 독자들의 경외심을 느낄 때 가장 팔팔해졌다. “어떤 형태로든 독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건 나에겐 사랑이라는 노동인 걸요”라며 아첨하던 사나이는 자기가 쓴 소설을 자주 ‘공연’했다. 그는 자기 연기에 감전된 ‘되다 만 배우’이기도 했으니까. 어떤 때는 주먹을 꽉 쥔 스크루지, 맹목적으로 낙관적인 인물, 진을 꿀꺽꿀꺽 마시는 산파에 이르기까지 스무 명이 넘는 등장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같이 웃고 떠들다가 그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 “그런데 내가 쓴 책 뭐 읽어 봤어?” 하고 물어볼까 봐 좀 걱정되긴 한다. 내가 “사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어릴 때 읽었는데 ‘두 도시 이야기’는 아직 못 읽었어요. 책이 너무 두꺼워서”라고 말하면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 중에서 빌 사이크가 낸시를 살해하는 클라이맥스를 연기하며 그 당시 청중을 울리던 눈을 나에게 부라릴 것이다. 그때 “이렇게까지 당신 글에 빠지는 내 자신이 차라리 미워요” 하고 말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만, 그런 말은 그의 팬들이나 하는 소리인걸.
솔직히 그는 내 인생을 바꾼 작가도 아니고. 그러니까 디킨스 옆자리는 패스!
어떤 이의 위대함은 명성이나 유산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오직 그가 들려주는 스토리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정치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오리아나 팔라치가 인디라 간디, 덩샤오핑, 빌리 브란트 같은 세계 거물들을 인터뷰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코앞에서 듣고 싶다. 호메이니 앞에서 차도르를 벗어 던진 일, 인터뷰 중 수박을 먹으며 트림을 세 번 한 무하마드 알리 앞에서 마이크를 집어 던지며 “이런 무식한 게 챔피언이라고”라며 포효하던 일, 시대의 거간 헨리 키신저를 빈정 상하게 했던 일에 대해. 그리고 상대를 완전히 발가벗길 때까지 절대 그만 두지 않았던 인터뷰 방식에 대해.
키가 작은 이탈리아 여자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것이 독재자로부터 나왔든,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든, 민중을 살해한 장군이나 사랑받는 지도자로부터 나왔든, 권력이란 비인간적이고 혐오스러운 현상이에요. 나는 세상에 태어난 기적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압제에 대한 불복종을 택했어요.”
적대적 환경 속에서 더욱 불이 붙는 맹렬함과 남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기던 저널리스트의 본질적 적극성은 시간이 흐른 뒤 조금 변형되었다. “이제는 전처럼 화낼 힘이 없어요.” 그러나 그날 저녁만은 가운데로 가르마를 낸 머리, 아이라인으로 강조한 청회색 눈,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지 않았던 그녀를 다시 부르고 싶다. 영원히 참호 안에 머무를 것만 같던 사람을.
이상적인 저녁 식사 자리에 동반하고 싶은 사람의 속임수는 본래 성격이 어떻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자체 추진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 천재, 폭군, 전설과 저녁 식사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유혹적이지만 더 좋은 것은 이상주의의 단순함일 것이다. 아니타 로딕은 ‘바디숍’의 창설자이자 커뮤니티 트레이드(공정 무역)를 실천하는 행동가이며 반전 운동가. 그리고 유머러스한 할머니였다. 그때 인도 남부 마두라이에서 우리는 답 없는 질문을 했고 공허감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계의 불평등, 선의와 불의의 경계, 부자 나라의 약점, 절반만 승리한 전투, 여성 스스로 존중하는 법에 대해.
“인생에 중요한 기회는 단 한번 찾아온다고 믿어. 난 윤회를 믿지 않아. 정열이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야. 나의 원천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인식한다는 거지. 또 하나는 불만족.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고 싶어져. 에너지를 마구 주입하는 거지.”
그녀 앞에선 지루한 어린아이처럼 빈둥거릴 수 없었지.
그러나 인류의 스승 백 명과 함께한 자리라고 해도 끝난 뒤에는 긴장을 풀고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위대함이란 평범한 이들에게는 추가된 부담이며 끝나지 않는 악몽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밤, 감정이 지나가는 찰나에 내가 초대하고 싶은 이들 전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 모두 직접 보지 않고는 존재했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는 세계로 숨어버렸다는 것을. 그 순간 문득 살아 있는 이름이 생각날 것이다. 해리슨 포드. 저녁은 같이 못했지만, 레아 공주와 곡절 많은 연애의 짐을 벗어 던지고 그냥 한 솔로 자체가 되어 달보다 큰 잔에 와인 한 잔 마시자 하면 너무 늦었으려나?
우주가 증기를 내뿜는 밤, 마지막으로 떠오른 사람은 칼 세이건이다. 그의 딸이 한번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지금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그가 들려준 대답 때문에.
“나는 세상 무엇보다 그분들을 다시 보고 싶지만 죽음 뒤에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들을 다시 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그걸 믿는다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다른 사람들, 특히 권위 있는 이들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너 스스로 속이게 될 거야.”
상상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든 위인이 본향으로 돌아간 밤, 칼 세이건이 한 말은 모두의 다음 날 아침을 비출 것이다. “너는 지금 살아 있어.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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