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연 넓히는 중앙은행
▶ “사회문제, 금융 시스템에 영향” 다양한 관심사에 의견 적극 표명…“중앙은행 전문 영역 벗어나” 비판
집권자, 정치색 반영 노골화땐 물가관리 핵심역할 소홀 가능성
‘뭐든지 하는(Do-It-All)’ 중앙은행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있다.
세계적 화두인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물론 인종차별(미국), 이민(싱가포르) 등 각국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들까지 언급하고 있다. 사회 문제가 통화정책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탈탄소 관련 움직임은 단연 눈에 띈다. 지난 7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탈탄소 프로그램을 연내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탈탄소화에 크게 기여한 금융기관에 0%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BOJ 탈탄소 기여 금융기관 우대이뿐 아니다. 영국 중앙은행도 대형 은행과 보험사를 대상으로 기후위기가 금융 시스템에 야기할 리스크를 평가하기 위해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검토에 들어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기후위기가 ECB의 임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점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통화정책을 고려할 때 기후위기와 관련된 상황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불평등도 근래 중앙은행이 천착하는 주제다. 독일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가 국제결제은행(BIS)에 올라온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모든 연설을 분석한 결과 ‘불평등’ 언급이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만 해도 전체 연설의 0.5%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는 7%로 14배 늘었다. 올해는 이미 전체 연설의 8%로 더 증가했다. 당장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최근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욱 뒤처지는 등 회복세가 고르지 않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도이체방크의 짐 레이드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간 중앙은행들은 재정 정책과 사회정의·인종·성별·기후위기·불평등 등 수많은 주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통화정책을 일임 받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벗어나는 일종의 ‘외도’로 비칠 수 있다.
중앙은행장 불평등 언급 14배 늘어반면 각국 중앙은행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당장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기후위기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해당 지역 내 주택 소유자의 손실을 야기하고 이는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소득·자산 불평등이 심해지면 경기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이에 따른 통화량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중앙은행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MF)은 “기후위기가 재산 및 인프라·토지 등에 발생하는 물리적 위험은 물론 소비·투자 심리까지 흔들며 금융 시스템에 타격을 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관심사가 중앙은행의 전문 분야를 넘어 ‘과하게’ 다양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의 라비 메논 청장은 최근 “외국인 노동자의 이민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처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이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중앙은행 총재가 이런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메논 청장의 발언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중앙은행장의 발언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예를 찾기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차별에 대한 반발이 커가던 미국에서는 연준이 성명을 통해 “소수 인종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이 경제 확장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중앙은행의 임무가 완전히 충족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기후 및 사회정의 문제는 중앙은행의 영역이 아니다(팻 투미 공화당 상원의원)” “불평등 해소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할 일(하워드 데이비스 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사회 이슈 개입은 독립성 흔들 수도중앙은행의 역할 확대가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보통 불평등과 인종차별 등 사회정의 이슈는 관점에 따라 정치권의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질수록 대통령 등 임명권자가 통화정책에 대한 능력과 관계없이 자신의 정치·사회적 성향과 비슷한 사람을 중앙은행장에 앉히려는 의도를 노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사회 이슈에 대한 개입을 꺼리던 알레한드로 디아스 데레온 중앙은행장의 연임을 무산시키고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인물을 발탁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 중앙은행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혀 통화정책까지 움직이려 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 경우 정작 ‘안정적인 물가 관리’라는 중앙은행의 핵심 역할에 소홀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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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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