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사람은 대체로 다섯 단계의 감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 가설은 스위스 출신 심리학자인 엘리자벳 퀴블러-로스가 말기 환자들과 상담하며 느낀 바를 1969년 책으로 펴내 유명해져 ‘퀴블러-로스 모델’ 혹은 ‘슬픔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라 불린다.
첫 단계는 ‘부정’이다. 자기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두 번째는 ‘분노’다. 왜 하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나인가. 나는 억울하고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분노하게 된다. 세 번째는 ‘협상’이다. 죽는다는 사실은 인정할 테니 자식이 결혼하는 것을 볼 때까지만이라도 생명을 연장해달라고 하늘 혹은 신에게 비는 것이다. 네 번째는 ‘우울’이다. 이런 자신의 기도와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데서 오는 불안이 우울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수용’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단계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손실에 직면한 투자가들도 비슷한 순서를 밟는다. 자기가 산 종목의 가치가 하락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며 값이 싸진 것은 오히려 투자를 늘릴 호기라며 합리화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폭락하면 이제는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올바른 투자를 했는데 투기 세력의 음모로 가격이 하락했다며 세상을 원망한다. 그 다음은 조금만 오르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팔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회를 달라고 기도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회복되지 않으면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손실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바닥까지 떨어진 상품을 처분해 빈털털이로 나오는 것이다.
가상 화폐에 투자한 사람들은 요즘 이 다섯 단계의 진행 과정을 피부로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가상 화폐의 대표격인 비트코인은 21일 중국이 가상 화폐 채굴장을 전면 폐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8% 이상 폭락해 3만2,000달러 대로 떨어졌다. 1주일새 20%가 넘게 떨어졌으며 4월 최고치에 비하면 절반으로 내려왔다.
중국 정부는 네이멍구 자치구를 시작으로 해 마지막 남은 쓰촨성의 가상 화폐 채굴장까지 전면 폐쇄 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비트코인 채굴의 2/3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어 이 조치가 실행될 경우 세계 비트코인 시장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가상 화폐가 정부의 규제를 피해 돈 세탁과 자금의 불법 해외 유출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이 철퇴를 맞으면서 가상 화폐에 가장 열심이던 한국 투자가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소위 ‘잡 코인’으로 불리는 군소 가상 화폐의 상장을 일제히 폐지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상 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24종의 가상 화폐를 퇴출시켰는데 다른 거래소까지 포함할 경우 이미 40종 이상이 거래소에서 축출됐다. 이들이 전격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한국 정부도 올 9월부터 실명 확인등 거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래소들은 문을 닫게 하겠다고 발표하자 폐업 위기에 몰린 거래소들이 먼저 코인을 퇴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멋도 모르고 덩달아 코인 막차를 탄 투자가들이다. 이들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이고 하루 아침에 거래가 중단돼 휴지 조각으로 변한 코인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현재 세계 코인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상 화폐 종류는 1만 여종으로 불과 한 달 전 시가 총액이 2조 6,000억 달러였는데 이제는 1조6,000억 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 조지아에서 한 남성이 20달러를 가상 화폐 투자했다가 다음 날 평가액이 1조4,000억 달러로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돈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도 어떤 잘못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라스베가스 카지노 판도 이렇게 엉망이지는 않다.
모든 버블은 실제와는 거리가 먼 신기루 같은 사람들의 꿈을 먹고 부풀고 그 꿈이 사라지면 터진다. 아직도 ‘부정’ 단계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가상 화폐 투자가들이 하루 속히 꿈에서 깨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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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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