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브라더스가 다시 왕좌에 올랐다. 거대 통신사인 AT&T와 미디어 공룡기업 타임워너가 합병하면서 워너브라더스는 워너미디어에게 왕좌를 내주었다. 그러나 3년 만에 AT&T가 워너미디어를 기업 분할해 케이블TV방송인 디스커버리와 합병을 발표하면서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로 회사명이 정해졌다. 9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워너브라더스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 왕좌에 다시 앉힌 것이다.
새로운 회사의 슬로건은 ‘꿈이 만드는 것들’(the stuff that dreams are made of)을 내세웠다. 1941년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느와르 영화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에 나오는 험프리 보가트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에서는 귀중한 보물로 여겨졌던 ‘말타의 매’가 실제로는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가져다준 쓸모없는 쓰레기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문구 그대로 ‘우리가 꿈에서만 바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상징한다.
이 둘의 합병은 통신과 미디어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던 AT&T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급변한 미디어 소비 트렌드를 따라 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2018년 워너미디어의 전신인 타임워너를 850억 달러에 인수한 AT&T는 덩치 키우기 전략에 실패했고 워너미디어는 속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케이블채널 CNN과 HBO, 시네맥스, TBS 등과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를 거느린 워너미디어는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를 출범했다. 그러나 글로벌 가입자수는 6,400만 명에 불과하다. 2억7,000만 명의 글로벌 가입자수를 보유한 넷플릭스, 그 뒤를 추격하는 디즈니플러스의 가입자수 1억6,000만명에 비하면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다. MGM을 인수해 ‘007 시리즈’를 손에 넣은 아마존 프라임까지 가세한 지금 ‘리얼리티 컨텐츠 왕국’인 디스커버리와의 합병은 워너에게 있어서 OTT 플랫폼의 다변화 속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컨텐츠가 무기인 스트리밍 시장은 시청자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내 소비자들의 엔터테인먼트 시청 패턴은 완전히 바뀌었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증가가 컨텐츠 다양성의 확장을 초래한 것이다. 연예 기획사인 ‘유나이티드 탤런트 에이전시’(UTA)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미국 소비자 3명 중 1명이 미국 외 글로벌 컨텐츠 소비가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성인 10명 중 7명은 새로운 포맷, 플랫폼, 장르 등을 찾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검색에 시간을 많이 보냈고 4분의 1은 더 많은 장르와 타입의 스토리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 중 3분의 1이 미국만이 아닌 다양한 인터내셔널 컨텐츠를 과거보다 더 오래 접했다. 이 같은 컨텐츠 다양성의 확장은 최근 할리웃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부채질한다. 인터내셔널 컨텐츠에 대한 소비 취향은 아시안과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및 기회 불균형을 해소시키는 하나의 방안이 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성·인종 차별은 곧 경제적 불평등이다. 성소수자 및 장애인 차별은 더 심하다. 영화의 사회적 가치 확산은 영화 출연진에 인종이 다양할수록 흥행 수익이 높아진다는 통계 조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오스카는 백인위주’(#OscarSoWhite)라는 해시태그 운동은 성폭력 및 성차별을 방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달성은 “92년 백인중심주의가 무너진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됐고 윤여정씨는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오스카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아카데미 수상 자격에 4가지의 포용성 기준 양식을 추가한다고 해서 할리웃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진 않는다. 영화산업 전반에 과소 대표된 여성과 유색인종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장기전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할리웃 영화사들이 모든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확립에 있어 다양성과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
‘소수’인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아직은 마이너리티인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려면 저마다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개인으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는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영향력이 생긴다는 건 분명하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할 때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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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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