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2년도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처음에 간 곳이 켄터키 주 볼링그린이라는 인구 4-5만의 대학 도시였다. 웨스턴 켄터키 유니버시티라고 꽤 큰 주립 대학임에도 한국 학생이 2명, 그리고 교포 두 가정이 전부였다. 80년 초만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매시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전쟁에 쪄든 가난한 나라 정도 밖에 미국인에게 알려진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일 이주 사이로 8명의 한인 유학생들이 오게 되어 도시 전체의 한인 인구가 열 명 남짓, 모두 한 가족처럼 지냈다. 학교 밖에 나가면 난생 처음 동양인을 본 것인지 사람들이 눈이 동그랗게 되어 마치 원숭이 구경하듯 했다. 맥도날드에 아침 식사하러 들렀는데 입을 딱 벌리고 모두가 나를 주시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옆에 있던 4-5살 된 백인 아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때의 당황함이란. 그때 2-3년간 켄터키와 오하이오 주에 있으면서 외로움을 뼛속 깊이 체험했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인들은 그 외로움을 알까?
그 후에 북가주에 와서 결혼도 하고 정착해서 아이들 낳고 아내와 살다보니 그 외로움이 많이 가셔지기는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스며있는 깊은 고독감은 떨쳐지지 않았다. 1세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 한국에서 지낸 세월보다 미국에서 보낸 세월이 훨씬 많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들 수록 더 한국식이 되어간다고 아내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나를 봐도 왜 이리 고집쟁이가 되어 가는지... 몇 해 전에 사역자 컨퍼런스가 있어 노스캐롤라이나 작은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호텔 속에서는 여러 한인 사역자도 있었고 프로그램이 바쁘게 돌아가서 외로운 줄을 몰랐었다. 그런데 잠시 브레이크 시간에 호텔 밖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갑자기 엄습해 오는 외로움을 느끼고는 자지러지게 놀란 적이 있었다. 처음 켄터키 주에서 외로움에 사무치던 똑같은 그 느낌이었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내 잠재의식 속에서 그 고독감이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90년 대 부터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바뀌는 서울의 모습에서 옛날 추억의 장소를 헤아려 찾느라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해매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최근에는 그 노력조차도 포기하게 되었다. 시내 중심가 빼고는 너무 변해서 서울은 이제 전혀 모르는 지역이 되어 버렸다.
미국은 수십 년을 살아도 익숙한 땅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외로움과 고독감이 가슴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요즈음 “이만갑”이라는 탈북자 프로그램을 자주 보고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탈북자들의 공통된 말은 명절보내기가 괴롭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외로워 명절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고 한다. 남한 땅이 풍요롭고 자유스럽기는 하나 문득 문득 스며드는 외로움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 땅에 조금 더 살다가 그냥 이 땅에 묻혀야 하는가? 쓸쓸히 고독하게. 한국에 아버님 생전 사두었던 가족묘지 터가 있다. 나와 아내의 이름표도 이미 그곳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이 미국 땅에 묻힐 것이다. 나는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딸은 자기가 짝을 찾아 한인 목사님 자제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아들은 누구와 결혼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식까지는 몰라도 한 세대 더 가면 아마도 혼혈될 것이다. 자식 대에 혼혈되건 손자 대에 혼혈되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의 자손이 혼혈되고 나는 가족 묘 터가 한국에 있음에도 이곳에 묻힐 것을 생각해 본다. 처음 미국 올 때 상상이나 했을까? 인생은 외로운 것이고 사람은 자기가 계획한 길로 거의 가지 못한다. 사실 나는 목사가 된 후에 혈육이나 외로움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내가 어디 묻힐지, 나의 자손이 어찌될지 무슨 상관이랴. 하늘나라가 내 본향인 것을.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미국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너무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미국에 올 때에는 무언가 아유가 있어서 오셨을 것이고 열심히 살다보면 익숙해지고 편해질 것이므로. 그 후에도 오는 외로움이라면 그것은 미국 땅을 살아가는 우리 1세 모두가 겪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위로가 되지 않을까?
<강순구 목사 (산호세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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