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개최를 147일 앞두고 있던 2020년 2월28일 “올림픽 개최일까지 147일, 국민의 힘으로 성공시키자”란 문구 바로 아래, “중지다 중지”란 낙서가 그려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본격화돼 올림픽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시기이긴 했지만 연기나 중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일본이 결국 팬데믹을 이유로 올림픽을 1년 연기해 현실화된 이 낙서는 현실이 아닌 38년 전 일본 만화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이 낙서는 일본의 유명 만화가 오오토모 카츠히로의 1982년 만화 아키라의 한 장면으로 여기에는 신문지 문구 “WHO, 전염병 대책을 비난”이란 기사 제목이 적혀있다. 38년전 만화가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중지, 전염병 사태까지 예견한 것이 소름이 돋는다며 지난해 큰 화제가 됐었다. 제3차 세계대전과 전염병으로 황폐해진 ‘2019년 네오도쿄’가 무대인 이 만화가 어떤 결말로 끝을 맺는 지 알지 못하지만 올림픽 개최 논란이 이듬해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예견하지 못했다.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이 이제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개최 여부를 두고 일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본에서 최근 4차 변이종이 폭발적으로 확산해 하루 5,000명에 육박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하루 사망자가 100명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 개최를 취소해야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 여행이 백신접종자에게도 위험하다며 일본을 여행 금지국가로 공식 지정해 도쿄 올림픽의 7월 개최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의 부흥을 전세계에 과시하려던 기대감이 사라진 지는 오래고, 국민의 80% 이상이 올림픽 재연기나 취소를 요구하고 있으며 시위도 끊이지 않는다. 당초 여론의 화살은 올림픽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는 스가 정권에 초첨이 맞춰져 있었다. 20조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피하고 재집권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이유 때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 집중되던 화살이 이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옮겨가면서 IOC와 올림픽 운동은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확산과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취소하지 않는 이유가 상업적 이익에 집착하는 IOC 때문임을 시사하는 발언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는 일본 국민이 불가피하게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바흐 IOC 위원장의 발언에 이어 “아마겟돈이 일어나지 않는 한 도쿄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며 일본 총리가 취소를 요청해도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다”는 딕 파운드 IOC 위원의 발언까지 알려지면서 일본 국민과 세계인은 경악하고 있다.
올림픽과 IOC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이고, IOC냐?”라는 것이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위해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도 불사하려는 IOC가 과연 제정신인가하는 의문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이 126년 역사의 올림픽과 IOC가 막을 내리는 종말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끊이지 않고 터져나왔던 IOC의 부패 스캔들과 극단적인 상업화로 퇴색해버린 올림픽 운동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제 오늘은 아니지만 이번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 기존 IOC체제가 아닌 새로운 세계 스포츠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올림픽은 가장 깨끗한 승부를 지향한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을 관장하는 IOC는 올림픽만 개최하면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남기는 거대 기업으로, 세상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인류의 우애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사라진 지는 오래고 선수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데만 탁월함을 보였을 뿐 아니라 올림픽 개최 도시 선정때면 뇌물 스캔들로 악취나는 부패의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각종 스캔들에도 꿈쩍 않던 IOC가 도쿄 올림픽 개최 논란만큼은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126년을 이어온 IOC 체제 종말의 서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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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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