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어의 홍수에 휩쓸려 살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서로의 이해 충돌로 거짓말·거친말의 혐오스런 언어가, 특히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여과없이 언론매체에 선정적으로 노출 되고 있다. 20세기의 철학자들은 19세기와는 다르게 의식보다 언어를 탐구하는데 집중했다.
언어는 의식보다 더 객관화되고 보편화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을 최초로 탐구한 현대 분석 철학자이다.
그 결과 개혁 법안들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선거 결과는 대참패였다. 중도층 표심을 잡으려다 집토끼 표심마저 놓친 셈이다. 보궐선거 참패로 책임성 여론이 일자 침묵으로 일관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충성 맹세로 화답하는 치밀한 계산으로 득이 있는 곳에 붙어 민심보다 당심을 선택했다.
그리고 선거 참패 원인을 초선의원 5인방을 내세워 조국과 추미애 전 장관에게 화살을 돌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배은망덕한 비겁한 짓을 한 셈이다.
최근에는 당 경선시기를 두 달 연장하자는 또 다른 분란의 불씨를 점화시키고 있다.
게임이 어떤 룰을 만드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듯이 언어 역시 어떤 맥락 속에서 사용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진다. 그래서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할 때 소통이라 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때 불통이라 한다.
싸움·적대감을 조장하는 불통의 언어는 ‘공론의 장’을 오염시키는 언어 폭력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두 사례에서 보듯,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왜곡된 이러한 헛소리를 비판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출마를 놓고 출마vs 불출마 설, 국민의힘 당 입당vs제3지대 창당설 등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아전인수 격으로 각기 다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대했던 조남관 대검차장이 검찰총장에서 탈락하고, 검찰 제 식구 감싸기나 권력남용 사건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특히 아킬레스건인 배우자·장모·한동훈 사건을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쥐고 있어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를 상황이다. 국민의힘 당 입당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다.
입당과 동시에 중도층 표심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수사로 친이·친박 세력에게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데 굽힐 줄 모르는 강성 스타일로 봐서는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제 3지대 창당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큰 돈이 들어가는 창당 비용과 현역 국회의원이 어느정도 참여할지도 변수이다.
보수 신문들이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일방적 여론 띄우기를 해 주지만 그들의 희망일 뿐, 간을 본다기 보다, 복합적인 딜레마에 빠져 잠행이 길어진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당심을 얻지 못해 어렵기는 마찬가지며 친문·비문 계파 갈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 있다.
유권자는 정당에서 뽑은 함량 미달 후보가 나와도 기권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 투표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필자가 언급하고자 한 팁이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의 정파적 기사나 보도에 휩쓸려 현혹되지 않는게 첫번째 팁이다. 두번째는 능력의 근본 조건을 따져보는 일이다.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정리되어 있는 합리적 사고를 갖추고 있는 후보인가? 사회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개발하여 소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있는 후보인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에는 확실한 말을 하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에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후보인가? 세번째는 윤리의 근본 조건을 따져보는 일이다. 검증과정에서 모른 걸 아는 척 하는 후보는 필연적으로 헛소리나 거짓말 중 하나 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후보는 매우 교활하고 도덕적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 선택은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럼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심장한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침묵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을까? “침묵이 싫다면 실천하는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 고 그는 말한다. 데이트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헛소리 대신 다음부터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가 ‘논리 철학논고’에서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헛소리 없는 의사소통이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 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고 했던 것이다. 구차한 변명이나 거짓말·거친말 같은 헛소리 대신 침묵이나 실천하는 행동을 제시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한국 정치인들은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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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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