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집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참 안됐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 건강과 사역의 고달픔 때문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남편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언젠가 볼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함에 겨워 식사도 거른채 곧장 침상에 묻힌 집사람을 보면서 나 역시 안스럽고 미안하게 여기며 앞으로는 더 배려해야지 다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조금 거창하고 우아하고 표현하자면 긍휼의 마음이라 할수 있을런지..
긍휼(矜恤)의 사전적 뜻은 “가엾게 여겨 자비를 베풀고 돌보아 줌’이다. 긍(矜)은 ‘불쌍히 여기다’, ‘괴로워하다’, ‘아끼다’등의 뜻이 있고 휼(恤)은 ‘근심하다’, ‘굶주리는 백성을 먹이다’,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따라서 긍휼은 ‘불쌍히 여겨 보살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긍휼은 영어로 compassion인데 이는 라틴어 ‘파티’(pati)와 ‘쿰’(cum)에서 파생될 말로서 이 두 단어를 합치면 ‘함께 고통받다’라는 의미가 된다.
긍휼이란 말은 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개역 한글성서에는 모두 169회나 쓰이고 있다. 긍휼이란 말이 처음 나오는 성경귀절은 출33장 19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성경에 나타나는 긍휼의 헬라어는 ‘엘레오스’(Elleos)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어원인 ‘레헴’이란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레헴’은 어머니 자궁을 뜻한다. 고로 성경 언어학적으로 긍휼은 누군가를 향해 느끼는 동정심, 불쌍한 마음 정도를 넘어 어머니가 자식을 몸 안에 품고 갖는 무한한 측은지심의 마음이라 할수 있다. 긍휼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이며 그분의 본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구원얻고 주님 자녀,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 은혜이며 그분의 긍휼하심때문이다.
요즈음 주변을 돌아보면 건강, 재정, 직장, 자녀, 영적문제등으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들이 참 많다. 가난, 무지, 전쟁, 이별, 질고, 압제, 성차별, 자연재해를 겪은채 꿈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적지 않다. 죄가 존재하는 한 지구촌에는 아픔과 비극. 눈물과 고통이 그치질 않는다. 이런 불행앞에서 세상은 우는 자들에게 왜 고난받냐고 묻기도 한다. 사실 비극 앞에서 우리들은 너무 많이 생각을 한다. 고통받은 영혼을 향해 비정하게 인과응보를 논하고 시비곡직을 철저히 따지며 책임추궁하며 대책마련에 부심한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필요하긴 하다. 헌데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들의 우선적 할 일은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고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펼치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바이고 성숙한 믿음의 자세이다.
삶이 춥고 아쉬운 것은 환경이 열악하고 자원이 부족하고 풍토가 척박함이 그 요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긍휼함이 모자라서이기도 하다. 아무리 고난지수가 높아도 서로 긍휼히 여기며 보듬어 준다면 상처, 아픔이 상당부분 치유되고 행복이 되돌아 올 것이다. 2천년대 초에 한국에서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허준’ 드라마를 시청했는데 극중에서 스승이 허준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의원들은 환자에 대해 긍휼함을 가져야 한다”는.. 이웃과 세상을 대할때 우리의 자세는 긍휼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부자는 빈자에게, 승자는 패자에게, 권력자는 백성들에게, 목사는 성도들에게 긍휼함을 나타내야 한다. 기독교는 세상을 향해 말씀을 무기삼아 정죄, 심판만 하지 말고 주님마음을 품고 먼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긍휼이 결여된 기독교는 교리와 율법주의에 빠지고 영혼보다는 사역과 일에만 치중한채 예수님이 부재한 권위적이고 선동적인 집단에 불과하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호전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세상이 소요스럽고 살기가 녹녹히 찮다. 사람들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 비난과 정죄가 나옴직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비 사랑 긍휼이 더욱 필요하다. 지금은 주님께서 보이셨던 긍휼함을 서로에게 보일 때이다. 더 나아가 함께 고통을 나눌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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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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