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찬 시작’ 2017년 5월에 코인데스크가 주최하는 ‘블록체인 컨센서스’ 이벤트에 다녀온 후 내가 쓴 글의 제목이다. 어느덧 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앙은행에서 독점 공급하는 화폐와 탐욕에 가득 찬 금융기관을 거쳐야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제 체제에 대안을 제시하고, 부정부패와 싸울 수단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열심히 일했다.
2018년 여름, 국제 금융시장에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기획한 블록체인 기반 국제채권 발행을 이루었고, 이후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진했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침체기에 든 것처럼 나의 열정도 가라앉고 말았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독재체제 국가에서 블록체인에 열정적이어서 양날의 검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애쓴들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 싶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게다가 2020년부터 코비드 팬데믹으로 날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미국 내 극심한 분열과 인종 문제, 비이성적으로 광신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의 행태 등으로 나는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2020년 후반부터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진보하여 DeFi (분산 금융 Decentralized finance)가 확산되고 초기 기술의 문제점으로 제기된 확장 가능성 (Scalability), 다른 블록체인 간 상호운영 가능성(Interoperability) 등을 해결한 나은 대안들이 나오는 데도 나는 시큰둥할 뿐이었다.
2021년 새해에 들어서도 연초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그 측근의 폭동 선동으로 그 지지자들이 미 의회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태로 나는 우울의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우울할 때 으레 하듯 나는 책에 몰입했다. 그중 한 권이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이노베이터: 해커, 천재, 괴짜 그룹이 어떻게 디지털 혁명을 일으켰는가’이다.
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상상하고 도입한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쓴 1843년 ‘주석’을 시작으로 2011년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까지 디지털 혁명의 방대한 역사서다. 우리의 삶을 지대하게 바꾼 컴퓨터와 인터넷은 어떤 한 천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상상과 재능과 신념이 만나 끊임없는 작은 변화와 시도로 진보해왔음을 일깨운다.
지난 4월 28일 저녁,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후 100일 되는 날 이뤄지는 첫 국정연설이 있었다. 수십 년간 미 상원으로, 부대통령으로 일한 기성 정치인, 그의 대통령 선거 전 토론을 여러 번 지켜봤던 경험으로 뭐 새로울 것이 있겠나 싶어 그의 국회 연설을 보지 않고 책 읽기를 택했다.
이튿날, 한 시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 연설 봤어? 네가 말하던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는다'를 말해서 네 생각이 났어.” 작년 11월 전태일의 항거 50주년을 생각하며 쓴 글에 유리잔이 차고 넘치면 가난한 이들에게 떨어져 내릴 거라 주장하는 낙수 경제학 (Trickle-down economics)의 허상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그 친구의 말에 대통령의 연설 기사를 찾아보았다.
“트리클 다운 경제학은 결코 효과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밑바닥을 끌어올리고 중산층을 확장해 (bottom up and middle out: BUMO) 경제를 성장시킬 때입니다."
디지털 혁명이 있기 전 경제시스템은 탑다운 방식이었다. 땅, 건물, 산업 시설 등 물리적 자본을 소유한 지배층과 그들이 떨궈주는 것을 받기를 기다리는 대다수로 나누어진 시스템. 지난 수십 년간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이러한 탑다운 시스템에서 벗어나 BUMO 방식으로 삶을 풍족하게 이끌어왔지만, 중앙은행의 독점권 아래 있는 화폐와 금융체제만은 여전히 탑다운 체제에 남아있었다.
이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 2008년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후 나타난 비트코인이다. 사기라는 비방, 여러 나라의 규제에도 비트코인은 살아남아 테슬라는 올 2월 초에 미화 15억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기업의 유동자산에 포함했다. 그리고 4월 말 그중 일부를 팔아 비트코인이 유동자산 관리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입증했다.
세상은 이렇게 되돌릴 수 없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그렇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대담한 인프라 투자 안에도 디지털 경제를 위한 투자가 상당 부분 있다.
이를 두고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고려하는 도로나 수도 등 물리적 투자가 아닌 것을 인프라 투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변명으로 반대한단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위한 현 대통령의 원대한 포부가 나날이 진보하고 있는 기술과 만나 멋진 세상을 만들어가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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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 워싱턴 문인회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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