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유색인종과 여성 회원수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앞으로 작품상 수상 자격에 다양성을 반영하겠다는 오스카의 방향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LA다운타운 유니언 스테이션 시상식장은 참석자수를 170명으로 제한했고 전 세계 12개 행사장을 위성으로 연결해 모두가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나섰다. 오스카 시청자 수는 1,040만 명으로 예년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계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에게 작품상을 안기며 할리웃이 추구하는 포용성의 메시지를 확인시켰다.
윤여정씨에게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연기상을 안긴 ‘미나리’가 미국에 정착해 삶을 일구어 가는 이민자 가족을 통해 미국을 보여준 영화였다면 아시안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거머쥔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에 자발적 유목민(Nomad)으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매드랜드’의 제작 및 주연을 맡아 생애 3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2개나 거머쥔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2018년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수상 소감으로 ‘인클루전 라이더’를 외쳐 크나큰 반향을 일으킨 배우다. 인클루전 라이더는 영화인들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출연과 고용을 요구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계약인데 맥도먼드는 할리웃 영화계에게 가장 취약한 입지의 아시안 여성을 ‘노매드랜드’의 감독으로 낙점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제시카 부르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네바다주의 경제 붕괴 이후의 삶을 담았다. 르포 기자 출신인 저자는 3년 동안 밴을 타고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노매드의 삶을 취재했는데 그녀가 본 세상은 암울했다고 한다. 렌트와 모기지를 내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고 결혼에 실패했고 연금을 잃었다. 이들은 차량주거를 하며 유목민으로 살면서 여름에는 국립공원에서, 가을에는 사과 농장에 일하고 겨울에는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돈을 벌고 있다. 주인공 펀(Fern)처럼 그들은 스스로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칭한다. 집이 없는 ‘홈리스’가 아니라 집을 떠나 몇년 간 길고 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선택으로 유목민이 된 이들은 오가다 만난 사람들과 낮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밤에는 캠프파이어에 파산 서류를 던져 넣는다. 거리 축제에서 ‘이 땅은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만들어진 땅’이라는 방랑자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맥도먼드는 2017년 저자인 제시카 부르더를 만나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고 운명처럼 2017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로데오 카우보이’(Rider)를 보고 매료돼 클로이 자오 감독을 프로젝트에 영입했다. 자오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수락하며 맥도먼드에게 주인공 펀역을 제의했다. 당시 61세였던 맥도먼드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했고 자오 감독은 현실을 살아가는 노매드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귀기울이게 만들 존재감있는 배우를 얻었다. 그렇게 이들은 ‘노매드’가 되어 밴에서 동거동락하며 2018년 가을과 겨울을 함께 보냈다.
경제 붕괴로 집을 포기하고 자발적 선택으로 차량 거주를 하는 영화 속 인물들(Vandwellers)은 새로운 방식의 생존을 택한 유목민들이다. 일부 도시에서는 차량 주거가 불법이지만 LA 등지에서는 차량주거를 금지하는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네바다주 엠파이어는 실제로 경제 붕괴로 인해 유령마을이 된 광산 도시다. 석고 광산과 석고판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 USGC가 소유했던 이 도시는 2011년 1월 기업이 도산하면서 주택시장이 몰락했다. 생계난을 견디지 못해 집을 처분하는 ‘하우스리스’가 늘어난 것. 회사 측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월 200달러의 임대주택에 살아도 좋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떠나는 걸 선택했다. 가르칠 학생이 없는 학교는 문을 닫았고 교회도 텅 비면서 도시가 사라지고 우편번호마저 없어졌다. 2016년 이 도시를 1,138만 달러에 매입한 광산업자 데이빗 혼스비가 “세상의 종말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고 표현했으니 5년의 세월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짐작할만하다.
코로나19 감염률이 낮아지면서 경제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규모 실직 사태에도 국가 지원으로 겨우 집을 잃는 사태는 면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팽배하다.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자오 감독의 말처럼 노매드랜드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해 걷게된 고난의 길에서 ‘나’를 되찾아보자. ‘살면서 또 만나’(See you down the road) 인사를 나눌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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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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