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는 경계가 없는 치열한 전선인지도 모른다. 치열한 전선에서 각자도생은 때로는 ‘악의 평범성’도 자기를 위한 변명으로 정당화 한다.
고상하게 이야기하면 희망인 지나친 습관성 욕심은 과유불급이 되어 자신과 가정과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중병이 되기 십상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습관성 중독은 알코올 중독이나 수많은 종류의 마약 중독일 것이다. 아편 중독으로 중국이 홍콩을 뺏겼듯, 개개인의 지나친 과욕은 절망사(絶望死)를 초래하기도 한다.
마약과 술 외에도 우리가 간과하는 중독은 연속극과 스마트폰의 중독 일 것이다. 스마트폰과 연속극의 과몰입은 뇌가 습관적 또는 조건 반사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져 일정 시간동안 미치는(과 몰입) 현상일 것이다.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종합 예술은 사람에게서 가장 큰 욕심이 되는 식욕의 욕심, 에로스(SEX)에 대한 욕심, 불륜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랑의 욕심, 돈과 명예의 욕심 등이 항상 철철 넘친다. 우리는 극중의 폭력에 박수를 보내고 불륜의 사랑에 공감하는 짜릿한 마음이 중독이라는 것을 모르고 영화나 연속극 속으로 빠져든다.
종교도 중독이 있다. 흑백 논리라는 극심한 이분법의 종교에 과몰입을 하면 맹신(盲信)을 넘어 광신(狂信)이 되는 사례는 허다하다. 그런데 과몰입 뇌가 소성을 유발하는 중독물이 국제 사회에서 법적이나 혹은 문화적으로 허용된다는 사실은 종교적, 인권적, 윤리적, 의학적 입장에서는 커다란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중독은 병리학적인 것을 따질 것도 없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심각한 질병을 초래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중독성 물질을 비싼 값으로 열심히 소비한다.
역사상 가장 오래 됐다는 술의 알코올, 하루에 20억 잔이 소비된다는 커피와 티, 탄산음료의 카페인. 단 몇 그램으로도 사람을 죽인다는 담배의 니코틴, 이 3가지가 전 세계에서 용인되고 권장되는 중독물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중독 이외에도 연속극과 스마트폰을 더하고 싶다. 이 둘의 중독은 해마다 화학 비료만 받아 먹는 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재미스럽고 그래서 피로 회복이 된다지만 솜이 물에 젖어들듯 피해가 큰 것만은 사실이다.
집 안팎의 일, 독서 등을 마냥로 미루고 알 수 없는 신조어에 누가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는지 막가파 식의 해라체의 반말 대화, 심지어는 망측스럽게 자기 남편을 아빠로 호칭하고 오빠로 부르는 몰상식의 무감각 중병은 아마도 연속극의 교과서 덕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을사오적은 나라와 국민을 팔아 작위를 구걸하고 땅 부자가 됐고 현대판 오적들은 나랏말을 팔아 명예를 얻어 지식인 행세를 부리고 있다. 다름 아닌 소설가, 시인, 극작가, 신문 방송이 그들이다. 이 오적들이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찬핵(송곳으로 열매의 씨를 뚫어서 죽이는 일)하여 말살시키고 더럽히는 성성(猩猩:원숭이)이들이다.
보기를 들어보자. 많이 쓰이고 활자화 되는 ‘먹거리’는 우리말 ‘먹을거리’인데 국적 없는 먹거리를 신문 방송은 줄기차게 사용한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들은 우리말 ‘그림내’나 ‘정인’을 버리고 일본말 ‘애인’만을 쓰며 우리말 ‘살프슴’ ‘생끗이’를 버리고 일본 말 ‘미소’만을 골라 쓴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쟁이들의 세치 혀는 ‘국민’을 앵무새처럼 나팔을 불어도 우리 말 ‘인민’을 이야기 하면 보안법에 걸리지나 않는지 아예 잊어버리고 있다. 왜일까? 인민이란 말을 북한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국군’은 우리말로 ‘인민군’이다. 보기를 몇 개 더 들어 보자. 왜놈 말 현미는 우리말로 ‘매조미 쌀’이요 일본말 부부는 우리말로 ‘내외(內外)’요, 일본말 결혼은 우리말 ‘혼인’이요, 일본말 감사는 우리말 ‘고맙습니다’, 은하수는 ‘미리내’, 축제는 우리말 ‘잔치’다.
허파는 우리말 ‘부아’(부아가 치민다), 세면은 세수, 외출은 ‘나들이’다. 즐겨 먹는 먹을거리 채소인 하루나는 우리말로 가당초다. 땡깡이라는 행패는 일본말 발작, 혹은 간질이다. 냄비는 알아도 우리말 ‘쟁개비’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적이 없는 말뜻과 문(文)장과 왜곡된 역사(史), 개똥같은 철(哲)학도 부실한 연속극 중독은 사람들을 때로는 천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러한 심각성을 모르는 자체가 더 심각한 중증 병인지도 모른다.
신문, 시인, 소설가, 극작가는 제대로 쓰고, 독자는 제대로 읽고, 후손들에게 제대로 남기는 것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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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 락빌, M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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