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특성은 “빨리빨리”라 한다. 그래서 건물 하나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빨리빨리 서두르다가 삼풍백화점도 성수대교도 와르르 무너졌고 정부의 정책들도 늘 이랬다 저랬다 하여 쓸데없는 낭비가 컸었다. 우리 어렸을 때 듣던 말이 우리민족은 단합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해 나라의 백년대계를 보지 못하고 늘 땜빵 식 단기 처방으로 운영하여 선진국이 되기는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놀란 것은 미국 대학의 도서관이나 교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 책장 등 가구에 대해서였다. 어찌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백년은 족히 넘는 가구들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디귿 자 위에 등받이를 붙여 만든 의자도 보았는데 공학을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위에서 체중으로 누르면 그 하중을 어떻게 견디는지 신기하기만 하였다. 무슨 쿠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엄청나게 단단하게 디귿 자로 만들어 그 위에 삼백 파운드 미국 학생이 앉아도 끄떡없이 그 하중을 견디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나라도 원래 그렇게 빨리빨리를 재촉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은근과 끈기가 있는 서두르지 않던 민족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천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목판도 구백년 전의 것이다. 돌이나 금속이 아닌 나무가 천년이 가도 갈라지거나 비틀리지도 않고 썩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왕조도 한번 서면 기본이 사오백 년이요 천년도 간다. 세계에 유래가 없다. 고구려와 백제는 찰백 년 이었고 신라는 천년이었다. 조선 왕조는 518년, 고려도 오백 년에 근접했다. 중국은 왕조가 길어야 삼백 년이었다. 조선 왕조 실록은 조선시대 27 임금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오백 년 이상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 왕조는 세계에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은 무었을 말하는가? 그만큼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던 것처럼 서민들의 피나 빨고 당쟁이나 일삼는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라 한가지 이념으로 오백년 이상을 견고히 버틸 수 있는 안정되고 우수한 시스템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 장구한 세월동안 조선의 백성들은 이씨 왕조를 떠받들며 살았던 세계에서 가장 인내심 강하고 보수를고집하는 그런 끈기의 민족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조급증은 아마 해방과 6.25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뒤진 후진국에서 속히 앞선 나라들을 따라가기 위해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한국은 모든 절차가 빠르고 간편하여 너무 좋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질로만 생각했던 빨리빨리 문화가 밀레니엄 시대에 오히려 엄청난 장점이 되었다. 우리에게 일본은 따라잡을 수 없는 나라였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일본의 가전제품과 자동차, 카메라, 기계제품 등은 도저히 우리가 해볼 수 없는 넘사벽 이었다. 나는 소니 TV를 사서 20년을 썼는데 그사이 이사를 예닐곱 번 하며 함부로 굴렸음에도 TV 화질이나 음질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다보니 품질 좋고 튼튼한 제품이 매력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밀레니엄 젊은 세대는 너무 튼튼하고 값비싼 제품보다는 적당한 가격의 멋진 디자인과 기능성을 가진 제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도 성능이나 견고함 보다는 디자인과 취향, 유행 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기술적으로 일본에 영원히 뒤질 것 같았던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최근 7-8년 사이에 우리의 반도체와 전자 제품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빨리빨리의 문화가 그런 기적을 만든 것이다. 은근과 끈기가 좋은 것인지 빨리빨리가 좋은 것인지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가 무었을 요구하는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이 시대는 빨리빨리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시대에 느릿느릿한 굼벵이 행보는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다. 우리의 핏속엔 끈기와 빨리빨리가 공존한다. 때로는 끈기있게, 때로는 속도있게 우리는 시대의 아들이 되어 그 시대에 적응하는 현명한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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