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빌딩 파이낸스 2021…(1) 금융 경계 무너진다
▶ 특정 산업 경기 사이클 관계없이 ‘데이터 기반 대출’로 신용 공급, 기존 은행은 자금 조달 비용 늘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 등 과제
빅테크의 명암빅테크의 금융 서비스 진출이 속도를 더하면서 기대와 우려도 교차한다. 전통 금융기관에서 독점적으로 이뤄져 온 금융 행위의 문턱을 낮추고 사용자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은 빅테크·핀테크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편 송금 서비스를 처음으로 성공시킨 토스나 공인인증서를 없애고 간편 소액 대출을 선보인 카카오뱅크의 등장을 계기로 ‘불편함’이 당연했던 금융 업무가 달라졌다.
은행 계좌 자체가 없거나 은행 이용이 쉽지 않은 경제활동인구가 대부분인 일부 국가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 두드러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는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만 6억 5,000만 명에 이른다. 싱가포르의 그랩(Grab)이나 인도네시아의 페이티엠(Paytm) 같은 빅테크·핀테크는 이들에게 대안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틈새를 메우고 있다.
빅테크가 내주는 대출이 소비자 편의성을 넘어 경기 사이클과 연동된 금융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국제결제은행(BIS)의 분석도 나왔다. 알리바바·텐센트·아마존·그랩 등의 빅테크는 주택·사업자산 같은 전통적인 담보 대신 차주에 대한 다방면의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대출을 내준다. 가령 자사에 입점한 사업자 대상으로 운전자금을 빌려주는 아마존(아마존 렌딩)의 경우 대출을 심사할 때 전통 은행과는 달리 사업 계획이나 부동산 담보가 아니라 사업자의 상품 판매 실적, 재고 상황, 판매자 신용도 등을 근거로 판단한다. 알리바바에서 이뤄지는 수백만 소비자의 거래 정보와 알고리즘으로 대출을 심사하는 앤트파이낸셜도 마찬가지다.
BIS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데이터 기반 대출’은 상환 능력이 충분한데도 담보력이 없어 전통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던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대출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경기 사이클에 취약한 기존 대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경기 침체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특정 산업의 전망이 일시적으로 나빠지면 담보대출을 내주는 은행도 대출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지만 빅테크는 차주의 경쟁력이 데이터로 증명된다면 경기 사이클과 상관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는 “빅테크의 신용 공급이 전통 은행보다 금융 사이클에 덜 의존적”이라며 “빅테크는 자체 생태계 안에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차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점”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쉬운 대출’로 부채 거품을 일으키고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직접 대출과 대출 중개, 후불 결제 등 빅테크의 신용 공급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금융 안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김혜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빅테크 펀딩이 일반화되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빅테크 규모가 커질수록 자금 유출입으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전체로 확산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빅테크의 금융시장 지배력과 데이터 독과점 가능성이다. 빅테크는 이미 유통·전자상거래·포털·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한 고객 기반과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해온 만큼 금융업에서도 비대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고려하면 빅테크의 금융 참여가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을 준수하면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혁신을 강조해온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이런 점을 감안해 기존 금융기관과 빅테크 간에 공정한 경쟁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금융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나 사업 영역 제한 등의 측면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빅테크 주도의 디지털 금융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에 따른 사이버 보안 리스크도 더 커졌다. 세계은행·케임브리지대안금융센터가 전 세계 114개 금융 당국 및 중앙은행 담당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핀테크·빅테크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로 ‘사이버 보안(78%)’이 꼽혔다. 다음으로는 ‘운영 리스크(54%)’와 ‘소비자 보호(27%)’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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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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