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싱그러운 초록잎에 망울망울 열매가 탐스러운 장식이 내걸린다. 미국에 산 지 20년이 지난 최근에야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이것이 미슬토 (Mistletoe), 한국말로는 겨우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던 예전에는 이맘때 저스틴 비버의 ‘나는 그대와 함께 미슬토 아래 서 있을 거예요'라고 노래하는 ‘Mistletoe’가 흘러나와도 그 경쾌한 기타 소리와 달콤한 멜로디에 어깨를 들썩이기는 했어도 무엇이 미슬토인지, 왜 미슬토가 크리스마스와 연관이 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12월에 들어서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농부의 연감 The Old Farmer’s Almanac’ 이메일에 ‘어디에서 미슬토 아래에서 키스하는 풍습이 생겼을까?’를 읽으며 이제야 왜 크리스마스 노래에 그렇게 미슬토가 많이 나오는가 알게 되었다. 북유럽 노르드 전설에 따르면 사랑의 여신 프리가(Frigga)는 아들을 낳아 발더(Balder)라 이름 짓고 그는 순수와 빛의 신이 된다.
프리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생물체, 심지어 무생물도 그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슬토를 포함시키는 것을 잊어버렸다. 악과 파괴의 신이 이것을 알고 미슬토 가지로 화살을 만들어 그가 죽게 되자 프리가는 슬피 울고 그녀의 눈물이 그 위에 떨어져 하얀 열매로 맺히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사랑과 평화를 위해 미슬토 아래 서는 이는 누구나 키스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미슬토, 겨우살이가 나무에 붙어 그 물과 영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기생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어떤 생명도 저 홀로 살 순 없다. 서로 주고받으며 상생의 관계를 맺기도 하고 때로는 일방적으로 뺏고 기생하는 관계도 있다. 몇 달 전에 집 안 식물에 진딧물이 생긴 후 진딧물과의 전쟁을 치르며 ‘신은 어째서 이런 기생물을 만들었을까?’ 푸념을 했다. 작은 진딧물들이 고구마순의 새싹, 베이질, 토마토 잎의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어 잎이 초록빛을 잃고 마르기 시작하면 ‘이놈의 새끼들!’ 하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그것들에게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미슬토가 기생물이라니!
기생물인 미슬토가 어떻게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신화 속 이야기가 되고 크리스마스엔 곳곳을 장식하게 되었을까 2015년 12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상세히 다루었다. 모든 곳이 죽은 듯 메마른 가지들 속에서 겨울내내 푸르름을 유지하는 미슬토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그리고 그 흰 열매는 남성의 정액, 빨간 열매는 여성의 다산을 상징해 유럽의 여러 신화에 나오는데 정작 미슬토가 기생하는 나무는 죽을 수도 있다 한다. 그래서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에 있는 빌라봉 (Billabong) 계곡 일부 지역에서 미슬토를 제거하고 관찰한 결과 그 지역의 새와 다른 생물들이 급격히 감소했다 한다. 게다가, 특정 종류의 미슬토는 암 치료제에 쓰이고 네팔에서는 여러 종류의 미슬토가 다양한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특히 부러진 뼈를 치료하는 데 좋다고 한다.
나는 몇 달 동안이나 나를 괴롭히고 있는 진딧물도 혹 좋은 점이 있는 기생물인가 싶어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진딧물이 모두 나쁜 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진딧물은 다른 유용한 곤충들의 먹잇감이 되어 다른 곤충을 불러오고 그 곤충들이 농작물에 더 피해를 주는 또 다른 곤충을 잡아먹어 결국 생태계가 유지된다고, 진딧물을 죽이려 살충제를 써도 진딧물은 곧 그에 적응해 사라지지 않는단다.
내가 아끼는 화초를 보호한다고 그런 생태계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진딧물을 없애면 도리어 해가 되고 화초와 농작물이 자연 그대로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니 사람의 기술이나 지혜가 자연의 신비를 이길 수 없음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진딧물이나 미슬토처럼 누군가에게 기생해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런 기생물을 잡아먹는 또 다른 곤충처럼 인간의 생태계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를 잡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런 기생물에게 나누어 주어도 여전히 씩씩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잎과 나무처럼 선한 힘으로 악을 이기며 사는 이도 있다. 모두가 자연의 신비로움 속, 제각기 신의 뜻을 품은 생명임을 잊지 말라고 12월, 겨울의 길목에서 미슬토가 내게 일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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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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