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가 거의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던히도 갖가지 상념들이 모두를 깊은 사색에 젖어들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절망과 좌절의 지루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올 연말의 감회가 특이하군요.
나는 올해 초 ‘타이태닉호의 침몰’과 ‘범명(梵鳴)’을 술회한 바 있습니다. 타고 있는 호화 선박이 침몰 직전인 줄도 모르고 질탕하게 놀아나던 승객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날 극치를 내달리고 있는 타락상이 불길한 예감으로 뇌리에 꽂히는 직관력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범명(梵鳴, 깊고 깊은 산중에서 어린 새끼 노루가 어미를 찾아 울부짖는 소리)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나의 예감은 코로나가 엄습하면서 맞아떨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늪에 빠져들며 무한 고립의 범명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전혀 형체도 정체도 알 수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내습을 무슨 연유로 예견할 수 있었는지 당혹감에 휩쓸려 있는 심정을 고백하는 바입니다.
아무튼 잔인과 순수와 각성을 함께 제시하고 있는 이 코로나라는 괴물 앞에 한 해를 보내는 우리 모두의 마음들이 어떠한지를 십분 이해하면서 깊은 위로를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함께 이 시대를 가고 있는 여러분과 더불어 웃고 싶고 더불어 울고 싶습니다. 왠지 연말을 보내는 기분이 그렇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고 또한 느낄 수도 없는 어떤 이상한 존재가 우리의 올 한 해를 묘한 감성에 몰아넣어 끌고 왔는지를 궁금해할 따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철저한 내관(內觀)을 압박해 온 것 같기도 합니다. 강제된 인간 단절은 개개인이 자기 점검을 하도록 촉구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했습니다.
완전 순수 상황에서 자기의 영혼을 성찰해 보라는 그런 가르침이었겠지요. 즉 제나(육체의 나)와 얼나(영혼의 나)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라는 그런 목소리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도 늘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을 설파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육체의 나(제나)의 지배를 받아 갖가지 탐욕을 주체 못 하고 고통 속에 있는지 영혼의 나(얼나)의 승리로 고상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항상 늘 참되게 살라는 그런 경구이겠지요.
예수도 항상 제자들에게 “회개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더러운 탐욕, 모함, 질투, 거짓, 억압, 폭력 등에 자신이 함몰돼 있지나 않은지 반성하라는 그런 교훈일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수행하고 득도하여 불성에 도달하였으며 맹자도 진인(眞人), 즉 참나에 도달하여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뭔가 엄중하고 방정맞고 침착하고 한편으로 요사스럽기까지 한 이 가늠하기 어려운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를 다 휩쓸어 갈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인류의 깨달음이 솟아오를 때 물러 갈 것인가, 매우 초조하면서도 궁금한 일입니다.
우리의 고향 한국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인류가 과잉 소유욕, 권력욕, 살타, 저주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사랑, 자비, 호혜를 찾아서 참나의 원 위치로 돌아가면 우리가 시련의 고행 길에서 풀려나고 니르바나를 노래할 수 있는 천국이 구현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문호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갈등을 일 년 내내 연기해 온 환상에 취해버린 듯한 연말이군요. 코로나가 던진 신비스러운 지금의 시련도 우리 모두의 영혼에 진정한 사랑과 신뢰가 충만할 때 스스로 물러가리라 확신합니다.
한국내의 썩은 정치와 경제 악화, 남북 갈등 등으로 중증 스트레스에 시달려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국내외 동포들의 분발과 도약을 기대하며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모두가 ‘제나’를 버리고 ‘얼나’를 찾읍시다.
<추신> 올 한 해 동안 필자에게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애정 어린 격려와 충고, 호응에 감사드립니다. 언론인의 기본원칙 ‘정론직필(正論直筆)’ 신조를 굳게 지키며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삼 존경하는 애독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지도편달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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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326-6609
<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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