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때 역사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는데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그 여름밤을 하얗게 새우며 월탄 박종화 선생이 쓴 “자고 가는 저 구름아” 7권짜리 장편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이 “자고 가는 저 구름아”는 임진왜란 때의 명신, 오성 부원군 백사 이항복이 계비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북청으로 유배되어 가며 철령을 넘을 때 지었던 시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시조는 이렇다.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외로운 신하 원통한 눈물)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궁궐에 뿌려본들 어떠리.”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의 이야기는 어릴 적 이야기책에 나와 잘 알려졌는데 죽마고우였던 두 사람은 임진왜란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충신들이었다. 광해군 초기, 광해군이 나라를 잘 다스려보고자 두 사람을 우의정과 영의정에 임명했는데 결국은 당파싸움과 광해군의 실정으로 5살 어린 한음 이덕형은 일찍 죽고, 이항복은 유배 끝에 결국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이 시조에 담긴 이항복의 애끓는 마음도 감동스러웠지만 사실은 절친 이덕형이 죽었을 때 간장을 쥐어짜며 지은 조사가 더 어린 제 마음을 흔들었었다. 당시 최고의 문장가는 월사 이정구였다. 그는 이항복에 앞서 먼저 한음 이덕형의 조사를 읊었는데 누가 들어도 매끈하게 충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명문장이었다. 이항복은 월사만한 문장가는 아니나, 다섯 살 어린 절친을 생각하며 함께 나라를 걱정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통곡이 터져 나와 조가를 지었는데 “한원군을 곡하노라.”로 끝맺은 그 글은 모든 이의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그때 최고의 문장은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간절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나는 이것을 계기로 국사를 전공하게 되고 이제는 목사가 되었으나 어릴 적에 읽었던 역사 소설에 나오는 그 백사 이항복의 이야기가 잊혀 지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적당한 관계 유지 정도로 생각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피상적으로 대하는 분이 있다. 마치 그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균형 감각 있는 신앙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유난히 피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마음의 절실함 없는 신앙은 이미 참된 신앙이 아니다. “예수께서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눅 22:14)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 보혈로 우리는 구원함을 받은 것이다.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피까지는 몰라도 마음의 간절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잠 8:17)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0)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사도바울은 “루스드라” 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았다. 사람들이 보니 죽어있어 시체를 성 밖에 갔다 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 목숨이 붙어 있어 꿈틀꿈틀 일어나 다시 그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분도 간절하게 사셨고 우리에게도 간절함을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했다. 얼마 전 추수감사절이 지나갔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들 중에 긴 항해 중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목숨을 잃었다. 또 정착한 첫 해 겨울에 또 절반 가까운 수가 죽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신앙생활은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무기력하다. 말씀을 전하는 분도 듣는 분도 마음의 간절함이 없다. 그러니 믿지 않는 분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마음의 간절함 없이는 아무도 감동받지 않는다. 땅끝까지 전도할 사명을 가진 우리크리스천들은 영혼 구원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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