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나가던 일본 시계산업이 폭망한 이유는 뭘까
가운데 Swatch는 88 올림픽 기념품이다. 오래전 서울지방 경찰청(남대문서)에 근무하시던 이 경위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왼쪽 사진) 수많은 이사로 인해 나의 많은 LP컬렉션들이 사라졌다. 한때, 500장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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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무엇인가-일본 전자시계의 급부상과 하락
명품이란 무엇인가? 대중이 인정해주면 명품이다. 스위스 스와치(Swatch) 시계는 스위스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싸구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 글로벌 기업 산하의 시계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최고 명품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Omega, Rado, Tissot, Longines, Blancpain, Breguet 등.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 세계 유명 그룹의 산모 역할을 한 나라가 다름 아닌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스위스가 수백 년 쌓아 올린 아성에 정면 도전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 전자시계들은 정말 인기가 좋았고 잘 팔렸다. 스위스 산 수제품 시계는 대중에게는 너무나 고가였으며 평생 한번 사서 차는 시계인 반면 일제는 수시로 부담 없이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큰 충격을 받은 스위스 최대의 두 기업이 1983년 공동 창출해낸 기업이 바로 Swatch 전자시계다. 일본에 대항할 저렴한 가격과 스위스 특유의 정확성, 신용을 앞세워 제품이 출시됐다. 두 나라간 누구 하나 물러 설 수 없는 진검 승부가 붙었고 그 결과는 일본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기업의 흥망성쇠는 미국 경영대(MBA)의 단골 주제거리다. 하물며 어느 한 산업 분야를 논하기에 이 지면은 너무 짧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기업들의 철학 부재를 꼽겠다. 기업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무슨 철학이냐고 묻는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다.
# 청강생 이종사촌과 번데기
1970년대 초 우리 집에 키 크고 잘생긴 이종 사촌 형이 경북 상주의 옥산 시골마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는 “국”자 들어간 대학에 다니는 청강생이었다. 그 청강생이란 뜻을 나는 정확히 이해 못했으나 프라이드 강했던 그가 무척이나 창피하게 여긴 것은 기억한다. 그때 청강생이란 무엇인가를 카피하는 모조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형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는 점 그리고 영한사전을 들고 다니며 단어들을 외웠는데 자주 나에게 사전에서 아무 단어나 찾게 한 후 그가 단어의 의미(definition)를 쪽 집게 마냥 맞추곤 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압권이었다. 그 형이 정말 좋았던 점은 가끔 신문지에 둘둘 말은 번데기를 사다 줄 때였다.
“야, 너희들 protein(단백질)이 무슨 뜻 인줄 알아? 남자는 밥만 먹으면 안돼. 가끔 육식해야 되는 거야!”
# 이해 못하면서도 따라 부르던 팝송
당시 나는 팝송에 심취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공부방에 들어온 그 형이 정신없이 팝송을 듣고 있는 나에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용호야 너 지금 영어 가사를 이해하면서 듣는 거냐?” “아뇨”
그는 피식 웃으며 “너 정신 차려. 음악은 작곡과 작사야.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거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지 않니?”
그 형의 다소 공격적인 말투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특이했던 나인 지라 이렇게 대답했다.
“형, 그럼 형은 왜 클래식 음악 들어? 가사도 없잖아? 그리고 그 오페라들은 영어도 아닌데, 나 미국 영화 볼 때 무슨 말하는지 몰라 그래도 엄청 재미있어.”
그 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좋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나는 레코드 앨범 커버에 적힌 영어 단어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팝송을 이해하려 했었다. 난해하고 이해 불가한 대목들이 수두룩했지만…. 알아듣기도 힘들었던,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닐 영(Neil Young) 특히 샹송가수 Mireille Mathieu, Adamo나 칸초네 가수들 노래는 아예 가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했다.
# 귀로 보는 음악, 눈으로 듣는 미술
음악은 귀로 보는 것이고 미술은 눈으로 듣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어느 장르 건 상관없이 첫 만남이 좋아야 한다. 예술은 남녀의 만남과도 같다. 예술에서 억지 춘향이란 없다. 싫은 것은 싫은 것,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일본 문화 전반적으로 그리고 일본 기업들이 창출하는 상품들은 깊은 철학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철학이 없다는 뜻은 그들 자신의 본 모습(identity)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마치 청강생 같다고나 할까. 찬란했던 일본 기업들의 폭망, 특히 일본 시계산업의 몰락은 그들 특유의 철학적 모티브 부재에서 찾아야한다.
그들은 만화를 그려도 서양인 모습의 동양인을, 그리고 물건은 서양인의 입맛에 맞추어 일본에서 생산했다. 일본 상품들은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로 상당기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것까지였다. 왜 무역에서 힘든 미국이 아직 문화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미국스러움에 그 해답이 있다. 같은 백인 문화에서도 미국만이 그 어느 유럽 나라와 다르듯이 한국은 한국다워야 계속 발전 가능한 것이다.
# BTS 천하가 된 까닭
왜 갑자기 세계적으로 한류 그리고 BTS가 유명해졌을까? 그것도 한국어로 하는 대중음악! 그 대답은 한국과 미국에 있다. 지난 30년에 걸친 미국 대중음악 시장은 흑인 중심 힙합 문화에 납치당해 총과 섹스 그리고 더러운 욕지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대중이 폭력적인 미국 문화에 식상한 시기에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다준 것이다.
한류 남녀들은 착해 보이고 총질이나 섹스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그랬듯 진정한 문화의 힘과 여력이란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모르기에 이해하고자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저 노래가 좋아서 따라하는 그런 것이 힘이다. 모방이 힘이 될 수는 없다. 오리지널리티란 원석 보석이다. 그 보석에는 특유의 철학이 심어져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목말아 하는 로맨스와 사랑을 노래해주어 한다. 아바(ABBA)나 비지스(BEE GEES)와 같이.
# 찬스와 위기
그러나 너무 좋아하는 것은 이르다. ABBA가 해산된 후 스웨덴에서 쓸 만한 어느 그룹도 나오지 않았고, 열병 같던 디스코 열풍도 신기루 사라지듯 없어짐을 우리 목격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달리 흉내 내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 철학이 있는 국민이란 점과 수천 년 살아남은 생존의 유전자(DNA)를 간직하고 있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팝송에 심취해 있었던 나로서는 K-Pop, K-Drama에 남다른 애정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만큼 우리의 힘이 강해졌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과 끝없는 발전을 기원한다. 한국을 떠난 후 그 이종 사촌 형 소식을 모른다. 가끔 마트에서 통조림 번데기를 사서 먹는데 왜 그때 그 맛이 아닐까?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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