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영화 007의 원조 James Bond 역을 맡았던 숀 코널리(Sean Connery)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영화 한 편으로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숀 코널리’ 신드롬을 만들었다. 1964년도에 상영된 영화 007 위기일발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판도를 뒤흔든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많은 제작자가 서로 앞다투어 첩보물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로버트 봉과 데이비드 매커럼이 주연한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 미국 첩보물 OSS 시리즈 등이 그 시류를 타고 등장했었다.
대부분 사람은 ‘007 위기일발’을 시리즈 1편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는 시리즈 2편이다. 제일 먼저 제작한 것은 ‘Dr. No.’(007 살인 번호)인데 영화 수입업자들이 흥행성을 고려하여 수입하지 않다가 2편이 성공하자 뒤늦게 1편을 수입하는 촌극이 발생했었다. 그 이후 3편 ‘Gold Finger’, 4편 ‘Thunderball’, ‘You Only Live Twice’, ‘Diamond Are Forever’, ‘Never Say Never Again’ 등 모두 7편의 시리즈에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에는 본인의 고사로 더 출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파이 이미지를 탈피하여 새로운 역할을 원했기 때문이다. ‘오렌지 특급 열차의 살인’, ‘멀고 먼 다리’, ‘The Rock’, ‘인디아나 존스’, 등에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기억에 가장 어필한 작품은 1987년도 발표한 ‘The Untachables’인 것 같다. 美 금주 시대의 갱으로 유명했던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차출된 유능한 수사관으로 출연한 그의 역할은 조연이었지만 주연 역할을 한 케빈 코스트너를 압도하여 마치 그를 위한 영화 같았다. 그는 이 영화로 그해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
007 첩보 영화의 처음 기획 단계 때 스텝들이 제임스 본드 역할을 할 사람으로 숀 코널리를 추천하자 영화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은 숀 코널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원작자는 주인공으로 상류층 출신을 원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명문가 출신이기 때문에 주인공도 본인처럼 우아하고 귀품있는 하이 클래스이길 원했다. 숀 코널리는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우유 배달부, 트럭 운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배우가 된 하층 계급 출신이다. 더군다나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더욱 싫어했다. 이 영화의 자본을 댈 제작자의 부인인 Dana Broccoli와 원작자인 Ian Fleming의 여자 친구가 적극적으로 숀 코널리를 추천하자 결정권을 쥔 두 사람이 여자들의 성화(?)에 결국 그는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하지만 본인은 실상 제임스 본드 역할을 탐탁히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만 그의 앞날 경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출연을 승낙했다. 캐스팅이 확정되자 감독인 테렌스 영은 손수 나서서 숀 코네리에게 개인 레슨을 받게 했다. 걷는 법, 말하는 법 그리고 식사하는 매너 등을 가르쳐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숀 코널리로 낙점되자 그는 그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이는 추후 007 영화의 밑거름이 됐다. 그의 역할을 본 원작자인 Ian Fleming은 쇼 코널리의 연기력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숀 코널리가 성공한 후 영화제 참석차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왔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 지나가는 모든 구역을 지날 때마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자 놀란 택시 운전사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어릴 적 이 지역의 우유 배달부였어요” 그러자 운전사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이 질문에 당황한 그는 한동안 말문을 잃은 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의 나이 70세에 들어서서 서서히 은퇴를 생각하고 있을 때 영화사에서 Lord Of The Ring의 출연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계약금 3,000만 불에 흥행 수입 15%의 로얕티를 주겠다는 제시였다. 그는 더 이상의 스트레스가 싫어 거절했지만, 만약 수락했으면 약 4억 5천만 불을 거머쥐었을 거액이었다. 그의 거절은 지금까지도 영화계에선 화제의 중심에 있다.
사실 어릴 때 그의 꿈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20대 초반 지방의 클럽팀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중 원정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던 프로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코치가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그때 제시한 금액은 주급 £ 6.25였다. 요즈음 시세로 환산하면 주급 £ 700 이다. 그 당시 상황으로는 파격적인 제의였지만 그때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축구 선수는 30세가 절정인데 그때 그의 나이 23세. 전성기까지 남은 시간은 7년 밖에 남지 않아 축구를 포기하고 배우를 선택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배우란 직업은 70세 넘어서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정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숀 코널리의 몸에는 두 가지를 문신이 있다. 하나는 Mom & Dad이고 또 다른 하나는 Scotland 라는 문신이다. 그는 그만큼 그 두 가지를 너무나 사랑했다. 지구에서 그의 활약은 끝나고 이제 천국에서 악한 무리와 싸워 우주를 구하는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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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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