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탓인지 지난 날들이 아련히 소환되며 가슴 한켠에 그리움의 파도가 출렁인다. 아직까지도 추억의 낭만이란게 남아 있긴 하나보다. 이번 글에는 내 개인적 이야기를 해 보련다. 영양가 부족한 글이라 여기시고 용납해 주시기 바란다.
“만일 내가 목사가 안되었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최근 옛시절이 생각나면서 이런 가당찮은 질문이 뇌리에 떠 올랐다. 소시적의 꿈들을 헤아리면서 말이다. 가상이지만 이에 대한 답들이 있다. 목사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영화평론가가 되었을런지 모른다. 옛날 흑백 T.V. 시절 토요일 밤에 <주말의 명화>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그때 영화평론가였던 정영일씨에 매료되어 영화에 대한 꿈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후 조종사가 되고픈 소망이 생겼다. 무거운 동체를 조종하면서 푸른 창공을 아릿다운 스튜어디스들과 더불어 날며 세계도처를 돌아보고픈 꿈이 있었다. 이어 글쟁이가 되고자 했었다. 어릴 적부터 글을 쓰고 시를 짓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나름 취미가 있어서 중, 고등시절에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었고 대학시절에는 짧은 산문, 수필들을 위시해 단편 정도의 소설도 쓰곤 했다. 사실 그때의 글들은 남들에게 보이기에 좀 조잡하고 유치하기에 대부분 폐기처분되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의 꿈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그랬다. 그외의 꿈들도 현실화된게 없었다. 지금 내 모습은 소설가, 영화평론가, 조종사의 모습이 아니다. 소시적의 소망들은 그야말로 깨고나면 사라질 꿈들에 불과했다. 대신 나는 목사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목사라고 여기며 남들도 나를 목사라 불러준다. 나는 공인된 정규 신학교(무허가 신학교들이 많기에 이렇게 표현함)에서 교육받고 몇 교회들에서 전도사로 섬겼다. 전도사 과정은 목사 임직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그리고 안수자격에 합한 상태로 기독교 미주성결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좀 뺸질거리다 신학교 동기들보다 다소 늦게 안수받은 셈이다. 사실 목사에의 꿈은 어머니가 반 강제로 심어준 것이다. 나를 낳으시고 기도하시길 ‘첫 아들을 주의 종으로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라고 하셨단다. 즉 서원기도인 셈이다. 아무리 첫 아들이지만 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렇게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기도대로 나는 목사가 되었다. 물론 목사됨의 계획과 진행과정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이셨지만..
목사안수 받은지 제법 오래되었다. 이제는 선배들보다 후배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교단총회에 참석해보면 모르는 후배들이 상당하다. 헌데 긴 사역기간동안 목사로서의 삶과 사역에 그다지 큰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다. 솔직히 소설가, 조종사, 영화평론가가 되었다고 가정하면서 느끼는 희열보다 훨씬 못하다. 여행, 운동경기, 영화관람, 취미 기호활동처럼 신명나지도 않다. 인기인들이 누리는 화려한 조명같은 것도 없다. 눈에 보이는 열매도 별로 많지 않다. 이민 목회자라는 구실을 내세운다 해도 내 생애 대형교회란 곳에서 한번도 사역한 적이 없다. 세상적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목사사역은 앞으로도 재미가 덜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목사로서의 삶과 사역이 재미없고 다소 초라했기에 그것을 무의미, 무가치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내 스스로가 판단하는 목사의 직은 별 재미는 없지만 참으로 의미있다. 다른 사람들이 몸담고 헌신하는 모든 일들도 각기 가치있지만 나에게 목회사역은 안수받은 이래로 오늘까지 삶의 큰 가치이며 의미였다.
내가 목회자로 평생 일하는 것은 바로 그 가치 때문이다. 세상재미에 푹 빠진 이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증거하는 가치, 영생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선포하는 가치, 상처받고 아파하는 영혼들을 다루는 가치, 천국을 현세에 일깨우는 가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가치, 이런 영적 가치들 까닭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목사의 멍에에 매여 산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멍에로 인해 내 삶은 자유롭고 가볍고 당당하기조차 하다. 스스로를 위한 나의 기도제목이 있다면 ‘남은 날들 좀 더 거룩하고 의미있고 인간적인 목사로 살아가게 하소서’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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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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