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반지를 구입한 후.
# 첫 키스
우리 인생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키스를 하며 살까? 단연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순간들, 그러나 왜, 첫 키스는 그리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일까?
그녀와 남영동 방향으로 걸어 내려오던 중, 어두운 철도 터널 안에서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가 휘날리며, 내 메마른 얼굴에 스쳤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갑작스러운 입맞춤을 했다. 눈은 질끈 감았지만, 무척이나 매서운 떡볶이 소스 맛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그때, 왜 인간의 얼굴에서 입술만 빨간 색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 몸의 모든 피가 입술로 모아져 터져 나가는 듯 했다. 키스는 남자의 혼을 뺏는가? 몸과 혼이 춤추며 하늘로 부상했다. 그녀는 나의 첫 키스 상대였다. 파리 제과점에 들러 팥빙수로 열을 삭이며 수많은 애기가 오고 갔다. 그날 밤은, 그 키스가 나의 육신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 어머니의 격노
그리고 얼마 후 그녀와 함께 용산 집으로 갔다. 안방 아랫목에 곱게 앉으신 어머님이 조용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 자리가 어색하여, 방에서 나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서 허공에 멈춰선 잿빛 구름 덩어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그녀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 나이 처녀들이면 대학을 다니든지 아니면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녀는 나와 노는 게 일이었다.
면담을(?) 끝낸 그녀가 대문 밖에서 기다리는 중, 인사차 들어간 방에서 어머니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혔다. “아니, 너는 정신이 있니 없니? 첫 번째 아이는 너보다 연상에 홀어머니, 전화 교환수! 그리고 지금 온 아이는 또 너보다 연상에 홀어머니, 가수 지망생?”
어머니의 반대가 너무 심하시자 “엄마, 가수가 어때서?” 하며 따졌다. 어머님이 벌떡 일어서시며 칼로 긋는 듯 말하셨다. “딴따라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너 신세 망쳐.”
그 ‘딴따라’ 라는 표현은 절대로 어머니가 사용하실 용어가 아니었다. 충격 효과를 바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효력이 있었다. 나는 화를 주체 못하고 집을 뛰쳐나갔고, 그녀와 삼각지 호프집에서 취하도록 마셨다.
# 텍사스 출장
사람의 일이란 참 묘하다. 그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서 군부대로 돌아가니 다음날, 중대장이 호출했다. 텍사스의 후드 기지(Texas, Ft. Hood)로 가는 출장 명령서였다. 그 길로 부대 내에 있던 미국은행으로 달려가 내 계좌에서 1만불짜리 수표(Certify Check)를 끊었다. 그렇다. 만 불은 내 총재산이었고, 당시 큰돈이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도착한 텍사스는 광활했다. 그 어마어마하게 큰 광야에 버려져 있는 듯한 군부대(‘세계에서 가장 큰 군 기지’라는 팻말이 정문에 붙어 있었다) 주변에는 쓸 만한 선물 가게 하나 없었다. 나는 4시간 떨어진 상업도시 달라스(Dallas)로 달려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스는 남부 최고의 도시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백화점 니만 마커스(Nieman Marcus)를 둘러본 후 근처 큰 보석상에 들어갔다.
열 손가락에 반지를 낀 여우같은 백인 여자 판매원이 가식적인 웃음을 띠면서 맞이했다. 내가 찾는 물건이 약혼 다이아 반지임을 알자 더욱 상냥해졌다. 반짝이는 수많은 반지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꼭 여자를 고르는 것 같은 환상이 들었다. 그중, 큰(사이즈가 중요했다) 다이아 반지를 선택하고 수중의 만 불에 맞추어 구입했다.
그리고 반납하면 환불(Full Refund) 되느냐는 질문에, 큰 카우보이 모자에 악어 부스, 그리고 흰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영수증에 시거보다 큰 만년필로 “I GURANTEED”를 서명했다. 그는 잉크가 마르도록, 영수증을 허공에 몇 번을 흔들었다. 누구냐는 나의 질문에 남부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로, “Sir, I own this place and we honor our products and I Guarantee (내가 보증한다)”라고 답했다. 마치 영화배우 마냥.
# Kiss and Say Goodbye
출장을 마치고, 그 반지를 속주머니에 간직하고 그녀를 만났다. 그날 그 만남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나를 본 순간, 너무나 그녀답지 않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의 말다툼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출장 중, 어머니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이다. 그녀를 달래보려 노력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우리의 그날 만남은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났다. 주위 사람들이 계속 곁눈질을 하건만 전혀 상관없이…. 감정이 복받치면 창피함도 잃게 됨을 그때 알았다. 결국 그 반지는 내 속 주머니 안에 남게 되고….
#주인 잃은 다이아 반지
그녀와 헤어지게 되니, 반지만 남게 되었다. 그렇다고 반지를 반납하기 위해 텍사스까지 가기도 뭐하고. 어머니는 내가 그녀와 헤어진 것을 눈치 채고, 만족해 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성질을 냈지만… 이미 끝난 일.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반지를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엄마, 이 반지 엄마 해.” 내가 내민 반지를 보시고는, 기절하시는 것이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났냐?” 내가 입을 다물자, 금방 눈치를 채시고는 “이거, 너무 크다. 돈 모아야지! 대학도 가야하는데!” “아니야. 엄마 해, 엄마한테 선물한 것도 없는데.”
“가서, 이것 빨리 물러라. 꼭, 알았지!” 그렇게, 그 반지는 다시 내 속 주머니로 들어갔다.
휴가를 얻어, 다시 찾은 달라스는 당시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다시 만난, 그 카리스마 넘치는 카우보이 주인은 그 영수증과 반지를 내밀자 단 한마디 말없이 환불해주었다. 한마디로 ‘쿨’ 했다. 비즈니스맨이란 이런 모습이란 듯이. 그때, 그의 모습이, 그 후에 내 비즈니스 운영에 크게 반영됐다. 나는 옆 술집에 들러, 잭 대니얼 한잔을 목에 부었다. 텍사스의 햇볕만큼이나 술맛이 뜨거웠다.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
Jeff Ah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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