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읍탐방 - 한국의 오지, 봉화 소천면
동해산타열차가 봉화 분천역과 양원역 사이 낙동강 위 철교를 지나고 있다. 영동선(영주~강릉) 봉화 구간 일부 간이역은 한때 지역 주민들이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고, 도로가 불편해 요즘도 차로 가기 쉽지 않다. 나훈아의‘고향역’은 두근거리면서도 애잔하다.‘코스모스 피어있는, 설레는 가슴 안고’ 달려간 고향은‘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곳이다. 그를 가황(歌皇)으로 기억하는 세대라면 비슷한 추억을 떠올리며 뭉클할 수도 있겠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고향은 허상이다.
‘이뿐이 곱분이’도 다 서울에 있다.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나올 어머니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런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향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골역을 찾는 이유는 편안하고 푸근하면서도 애틋하게 목 메이는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다. 봉화 소천면의 산골 간이역을 찾아간다. 추석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것도 달갑지 않은 시절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가보길 권한다.
■열차 승객 대신 걷기 여행자의 쉼터로
경북 북부에서 강원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하다. 최근 봉화에서 태백으로 가는 국도가 직선화돼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전까지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기차였다. 1955년 개통된 영암선(영주~철암) 철도는 차로는 가기 어려운 봉화의 산골 마을을 차례로 통과한다. 석포면에 승부역이 있고, 소천면에 임기, 현동, 분천, 양원역과 비동승강장이 있다.
영암선 철도(현재는 강릉까지 연결돼 영동선이다)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물자를 수송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1963년부터 19년간 승부역에서 근무했던 김찬빈 역무원이 역사(驛舍) 담벼락에 썼다는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라는 글귀는 역 주변 지형을 함축적으로 묘사한다. 이어지는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표현은 해방 후 대한민국이 건설한 최초의 철도라는 자긍심을 담고 있다. 태백 삼척에서 생산되는 석탄과 봉화 울진에서 벌채한 목재는 이 선로를 통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임기역 역시 금강송 혹은 춘양목으로 불리는 소나무를 실어 나르며 성장한 역이다. 역 앞에 스러질 듯 허름한 창고 건물이 한 채 있다. 1973년 인가 받은 ‘노동청 산업재해 보상보험 적용사업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번성했을 역 주변은 이제 퇴락한 시골마을이 되고 말았다. 역 마당에 코스모스가 잡초처럼 피어 있다.
소천면 소재지에 위치한 현동역은 상하행선에 각 2차례, 하루 4회 열차가 서지만 이용객이 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노란색 페인트로 외벽을 화사하게 단장했고, 내부는 깔끔한 책장으로 장식돼 있다. 청송 영양 봉화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 8코스 길목에 있기 때문에 열차 이용객보다는 걷기 여행자 쉼터로 이용된다.
■산타마을 분천역, 국내 최초 민자역사 양원역
분천역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화사해진다. 마을 입구부터 새빨간 털옷을 입은 산타클로스 조형물이 반긴다. 역 앞으로 이동하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트를 든 산타, 썰매 타는 산타, 선물보따리 챙기는 산타가 여기저기서 사진 찍고 가라고 유혹한다. 루돌프와 눈사람은 바람잡이다. 산타우체국까지 있으니 골짜기 전체가 울긋불긋한 산타마을이다. 장식이 좀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이렇게라도 잊혀져 가는 마을을 알리고, 소멸해가는 지역을 살려보겠다는 노력이라고 보면 오히려 안쓰럽다. 겉모습보다 내실을 기한다면 먼 훗날, 핀란드의 원조 산타마을에 견줄 한국의 대표 산타마을이 될 수도 있지 있을까.
분천역이 산타마을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덕분이다. 협곡열차는 하루 2회(수~일요일 운행) 분천역~철암역 구간을 왕복하는 관광열차다. 산과 강을 넘나들며 태백산 자락, 낙동강 상류의 비경을 감상한다. 여기에 강릉에서 출발하는 동해산타열차(수~일요일 운행), 동대구에서 출발하는 경북나드리열차(토ㆍ일요일만 운행)도 분천역이 종착역이다. 조그만 간이역이 대한민국 열차 관광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덕분에 역전엔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과 카페도 여럿 들어섰다. 그게 자랑거리일까 싶지만, 인적 뜸한 산골에서 변변한 음식점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이 지역의 현실이다.
분천역 앞 마을은 영동선 철도 개통 후 형성돼 역전마을로 불린다. 철길로 강원 내륙과 연결되고 찻길로 동해안 울진을 잇는 연계지점으로 작지만 지역의 상업 중심이었다. 인근 자연부락은 능호(凌湖), 가호(佳湖)라는 명칭으로 남아 있다. 낙동강이 호수처럼 잔잔하게 휘감아 돌아가는 아름다운 동네라는 의미다. 산은 험해도 물줄기는 그만큼 순하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이어지는 걷기길인 ‘세평하늘길’ 중 이곳에서 양원역까지 구간은 특별히 ‘체르마트길’이라 부른다.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인 2014년 분천역과 알프스 산악의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맺은 걸 기념하는 명칭이다. 비동승강장에서 철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산자락을 돌면 양원역이다. 걸어서 2.2km에 불과하고 철길로는 그보다 짧지만 이 구간에는 찻길이 없다. 도로를 이용하자면 분천역으로 되돌아 나와 울진 금강송면을 거쳐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거리로는 16km가 넘고, 도로가 협소해 30분 이상 걸린다.
양원역은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다. 최신식 공법으로 화려하게 지은 민자역사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지은 시설은 더더욱 아니다. 대략 10여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농막 수준이다. 내력을 알고 보면 주민들의 애환과 설움이 서린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간절한 간이역이다.
양원역이 들어선 건 1988년으로 영동선이 개통한 지 33년 지난 시점이다. 그사이 주민들의 고충은 눈물겨웠다. 기차를 타기 위해 낙동강 상류의 승부역이나 하류의 분천역까지 걸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다리품을 줄이기 위해 철길을 걷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10여명에 달했다. 기차가 마을을 통과할 때면 짐을 차창 밖으로 던져 놓았다가 다음 역에 내려 돌아오는 길에 수습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이어졌다. 마을 앞으로 기차는 다니지만 역이 없어 이용할 수 없었던 주민들은 청와대에까지 탄원서를 냈고 마침내 간이역 설치 허가를 받았다. 승강장과 대합실, 화장실을 만들고 이정표를 세우는 것까지 주민들의 몫이었지만, ‘양원역에 첫 열차가 정차한 날, 사람도 산도 강도 감격해 울고 웃었다’고 한다.
양원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봉화 소천면과 울진 금강송면의 두 원곡마을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현재 27가구 50여명이 살고 있다. 양원역에는 관광열차와 무궁화호를 포함해 하루 5회 열차가 선다.
승부역~분천역 구간에선 시간만 잘 맞추면 기차여행과 걷기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세평하늘길’을 따라 낙동강 하류로 걷는다. 깊은 산중이지만 물길을 따라 가기 때문에 그다지 험하지 않다. 승부에서 분천까지는 약 12km, 전 구간을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중간 지점인 양원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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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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