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1792-1868)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지만 사후 질적인 측면에서 다소 실추된 면모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살아 생전에는 찬란한 선율미를 과시하며 인기 상종가를 쳤지만 사후에는 그 나물에 그 반찬, 작품 사이의 어떤 다른 특징을 엿볼 수 없다는 비난이 일었다. 즉 작품성에 있어서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긴 작곡가였는데 로시니는 총 40여편의 오페라를 남겼지만 전반적으로 대동소이하며 ‘윌리암 텔’ 정도가 그 모습을 조금 달리할 뿐 대개 같은 스타일의 희가극 풍 일변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그의 3대 희가극으로 불리우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신데렐라’ 등은 마치 쌍둥이 3형제같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본 사람은 나머지 작품은 같은 음악에 다른 극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마적’,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바니’ 등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같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매우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각기 개성있게 다룬 모차르트와는 달리 로시니의 작품은 늘쌍 그게 그거다. 그것이 독일 음악계에서 로시니가 안주감으로 씹히게 된 이유였고 죽어서도 크게 대접받지 못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 생전 로시니의 위상은 모차르트가 비교 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같은 음악, 그렇고 그런 희가극 퍼레이드에 사람들은 왜 그처럼 열광했을까? 그것은 로시니가 그만큼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극음악의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즉 로시니만큼 오페라 음악에 있어서 카타르시스를 돌려주는 작곡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풀려고 음악회에 갔다가 이거 뭐지?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는 작품들과는 달리 로시니 작품만큼 스트레스 이완에 확실한 그 무언가를 보여준 작품도 없었다. 劇의 달인,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 그러면서도 음악의 마력에 취하게 하는 묘한 매력, 그것이야 말로 당대 최고의 오페라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로시니만의 위력이었고 비결이기도 하였다.
지난 7월18일부터 19일 자정까지 이틀간 SF오페라가 로시니의 ‘신데렐라’를 온라인으로 스트리밍했다. 2014년 작품으로, 생동감과 위트를 선사했다고 평가 받은 작품. ‘신데렐라’는 로시니의 또다른 명작 ‘세빌리아의 이발사’ 보다도 숨쉬기 어려울 만큼의 빠른 속도 소위 파를란도(parlando)가 거의 2배 이상 많아서 공연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메조소프라노는 차치하고 바리톤 역들 조차 숨쉬기 버거울 정도의 난타성 음률에 고문 받아야 하는데 관객은 흥미롭지만 성악가들의 고역때문에 공연 회수 조차 영향받고 있는 작품. 여주인공 메조 소프라노 Karine Deshayes, 계부역의 바리톤Carlos Chausson 등이 열창 무대를 선사했는데 단 이틀간의 스트리밍이 아쉬울 정도로 즐거움을 만끽시킨 작품.
우리 나라의 전래 동화 ‘콩쥐 팥쥐’와 닮은 ‘신데렐라’는 그 배경 설명만으로도 흥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바질레 (G. Basile) 프랑스의 페로(C. Perrault), 독일의 그림형제(J. L. Grimm) 등이 모두 같은 이야기로 작품을 남겼는데 로시니는 이 유명한 이야기에 상황 설정을 다소 변경하여 보다 위트있는 ‘신데렐라’를 선보였다. 즉 신데렐라의 모습을 구박받는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현실과 당당히 맞서는 처녀로 등장시켰고 요정이나 호박 마차, 유리구두 따위는 아예 없다. 계모대신 등장하는 계부는 신데렐라(안젤리나)의 상속권 몰수하기 안젤리나를 이태리 뜻으로 ‘재투성이 아가씨’, 즉 하녀라는 뜻의 신데렐라로 부려먹는다. 여기서 아버지(바리톤)는 악역으로서의 희극적 역할뿐만 아니라 성악적 측면에서도 가장 빠른 파를란도(parlando)를 끝없이 소화해야하는데 ‘신데렐라’가 단순한 신파에서 희가극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신데렐라’에서 주역 5 명은 그 어느 역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을만큼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시종 로시니 특유의 속도와의 전쟁을 펼쳐야하는데 성악가에게 커다란 고문을 안겨주는 ‘신데렐라’의 결함은 또한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
1815년 나폴리의 어느 극장과 매년 2차례 작품을 공연한다는 계약을 맺고 새로운 소재에 쫓기던 로시니는 1816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본가와 사적을 농담을 주고받던 끝에 즉흥적으로 ‘신데렐라’를 작곡하기로 결정한다. 작품은 단 24일만에 완성을 보았지만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신데렐라의 ‘설움은 끝나고’라는 아리아는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세빌리아의 이발사’ 의 알마비바 백작의 테너 아리아를 표절하여 갖다 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로시니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사람들에게 즐거움만 안겨주면 됐지 -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로시니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도 서곡을 다른 작품에서 갖다 붙였는데 아무튼 그게 그거, 어느 구석이에든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이 로시니만의 마력이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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