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데우스, 포노사피엔스, 알고리즘… 알아듣기도 힘든 신조어들과 함께 4차 산업 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인다. 증기 기관의 발명(1차), 전기 발명 (2차),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 (3차)에 이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개발 (4차)로 사회 전체가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각 단계의 기술 발전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며 ‘혁명’이라는 용어를 동반했다. 4차 산업 혁명이 몰고 올 미래의 양상에 대해서도 많은 예측들이 난무한다. 생활의 편리성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컴퓨터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에 대한 우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인공 지능에 대한 두려움, 디지털 문화로 인한 인간관계의 삭막함 등, 제 4의 물결에 대한 불확실성은 새로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얼마 전,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이 지옥 같은 나라라는 의미의 ‘헬(hell) 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그 표현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분분한 중에 20, 30대 젊은 층의 90% 이상이 헬조선에 동의한다는 설문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삶이 버거워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는 젊은 층의 문화를 보며 사회 전반에 대한 절망과 무기력감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희망찬 미래와 꿈을 향해 어떤 역경도 헤치고 나가야 할 젊은이들이 좌절과 포기를 기본 플랫폼으로 깔고 살아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 최 전성기에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젊은 나이에 최고의 공직까지 올랐으나, 정치적인 격변으로 유랑생활을 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단테의 고백이다. “돛이 없는 배에 올라탄 나는 가난이 인도하는 대로 이 바다 저 바다를 떠돌고 이름 모를 항구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에 실망하여 꿈을 접고 표류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통해 수세기전 단테의 한탄을 다시 듣는 듯하다.
인간은 두려움의 짐을 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한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신의 사랑보다 인간의 이성을 믿기로 결정한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자유의 갈증은 해갈됨이 없고, 이성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부모 없는 자식은 고아가 되듯 신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도 밀려났다. 인간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기계일 뿐이라는 황당한 이론에 매혹되며 근본 없는 존재임을 자처한다. 그리고 지성의 산물, 인공 지능의 탄생에 감탄하고 스스로의 위대함에 도취된다. 그러다 문득, 너무 커버린 자식에게 버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간이 신을 추방했듯, 인간도 인공 지능에 밀려날 수 있으리라. 만만치 않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인간 지능의 최고봉, 인공 지능 개발의 유혹을 물리치진 못한다. 그러는 동안 포노 사피엔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 호모 데우스 (신적인 존재가 된 인류)의 신인류는 신과 인간 모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알고리즘의 바벨탑을 우뚝 세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신을 찾던 시대는 가고, 이제 모든 문제는 인터넷의 제단 위에서 ‘검색’이 해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침내 신도 인간도 아닌 알고리즘을 숭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최첨단 기술로 가난과 질병을 극복하고 행복과 불멸을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 새로운 시대에, 인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를 “유동하는 공포”라 불렀다. 안개 자욱한 인생길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위협들이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 몰라 인간은 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정체를 모르니 해결책도 없고 원인을 모르니 예방할 수도 없는 막무가내의 공포와 두려움이 사회 전체를 덮고 있다. 돈, 건강, 자녀, 노후대책… 끊임없이 날아드는 돌들로 인해 잠잠할 날 없이 요동치는 마음의 연못… 부인할 수 없는 인간 심리의 현주소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 지옥 문에 적힌 구절이다. 그가 목격한 지옥의 모습은 처참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지옥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은 반복되고 고통은 계속된다. 영원히… 한편, 살아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있다. ‘선택’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이 휘청거리는 위기를 겪었을지라도, 잘못은 수정할 수 있고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아행세를 중단하고 부모에게 돌아가자. 부모를 홀대하고 자식을 우상시 했던 어리석음에서 돌이키자. 섬겨야 할 대상과 다스려야 할 대상을 바로 분별하자.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자, 희망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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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선교사, 버클리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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