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동안 내 여행 버킷리스트에 담고 있었던, 음악을 테마로 한 미 남부도시 여행을 지난 늦가을에 다녀왔다. 세계 대중음악의 수도라는 텍사스의 오스틴, 재즈의 탄생지 뉴올리언즈, 블루스 음악의 성지인 미시시피강 델타지역, 록큰롤의 발상지이자 유명한 엘비스프레슬리의 생가가 있는 멤피스, 미 컨트리 음악의 메카라 불리우는 내쉬빌 등 여러 음악도시를 자동차로 방문하는 로드트립이었다.
미 남부 지역은 흑인 영가, 가스펠 송, 재즈, 소울, 불루스, 로큰롤, 컨트리 뮤직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미 대중음악의 발상지이다. 현대 대중음악의 주류에 있는 재즈, 소울, 록, 펑크, 힙합, 디스코, 테크노 등의 댄스 뮤직, 요즘 한국 아이돌로 대표되는 K-POP, 모두 흑인음악의 유산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장르들이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은 미 남부지역에 노예로 끌려와서 목화밭, 농장 등 온갖 허드렛 일로 혹사 당하며 비인간적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들 삶의 고통과 한을 노래로 표출하고자 했다. 노예들이 그나마 자유롭게 갈 수 있었던 곳이 교회였고, 그런 환경에서 가스펠 송 및 흑인 영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소울 음악도 그들의 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들이 농장에서 집단으로 부르던 노동요는 차츰 블루스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대도시의 신식 악기들과 결합하여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대방출 되면서 블루스 음악은 리듬&블루스(R&B) 등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재즈라는 장르도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로큰롤은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흑인들의 거주지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흑인 특유의 감성을 익힌 백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새 장르를 열었던 것에 기원하며 비틀즈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컨트리 음악은 영국 아일랜드 등 유럽 각지에서 남부로 온 이주민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 신 개척지에서의 고단한 삶, 자연에 대한 동경 등을 읊조리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첫 방문지였던 텍사스 오스틴은 250개 이상의 라이브 음악바가 있어서 밤이 되면 도시 전체에 음악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기착지인 뉴올리언즈에서는 재즈 음악의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Preservation Hall’ 이라는 유서 깊은 소공연장에서 마이크도 없이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재즈 음악을 그들 바로 앞에 앉아서 들었던 순간이 무척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뉴올리언즈에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테네시 멤피스라는 도시까지 북쪽 방향으로 약 300마일을 드라이브하는 여정이었다. 일명 ‘Blues Highway’라고 불리우며, 대중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생에 한번 정도 자동차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순례지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다.
미 남북 전쟁 후 해방된 흑인들이 각지로 떠나 정착하며 남겨놓은 음악 유산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서 미시시피 주 전체가 블루스의 탄생지이며 요람이 되었다. 블루스 음악의 대부였던 BB KING의 고향 ‘인디애놀라(Indianola)’ 라는 조그만 마을에 머물며 BB King Museum, Delta Blues Museum을 방문하여 블루스 음악의 기원과 발전상을 조망할 기회를 가졌고 , 밤에 동네 바에서 수준 높은 로컬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을 감명 깊게 듣기도 했다.
여행 다섯째 날, 로큰롤의 전설적인 황제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 ‘그레이스랜드’를 둘러 보았다. 자가용 제트기, 클래식 자동차 전시관 등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과 가수의 위대한 족적에 우리 일행은 압도되고 말았다. 그가 당시 전세계 사람들에게 어마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 세기를 풍미했던 위대한 가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블루스, 록 등의 음악거리로 유명한 멤피스의 Beale St.의 야경은 마치 라스베가스의 조명처럼 화려했으며 몇 블럭 사이로 라이브 뮤직바가 줄줄이 있어서 몇 시간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생음악에 빠져들기도 했다.
마지막 행선지인 테네시 동부에 위치한 내쉬빌은 주민들의 90% 이상이 백인인 전형적인 남부 백인 도시였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시 전체가 컨트리 음악의 메카이며 일 년 내내 도심에 음악이 흐르는 참 매력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유명한 브로드웨이 거리를 거닐면서 그 명성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Country Music Hall of Fame 박물관’은 그 규모와 콜렉션들이 무척 웅장했으며 컨트리 음악의 역사와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Grand Ole Opry Show’에서 수준높은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감명깊게 참관했으며 공연 후 무대 뒷면을 둘러보는 흥미로운 시간도 가졌다. 8박9일 여행 기간 동안 풍요로운 미국 대중음악 세계에 푹 빠졌다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지에서 방문했던 남부도시들이 비록 경제ㆍ사회적으로는 캘리포니아에 비해 낙후되어 있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대중음악 유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절절히 느껴졌다.
우리가 한국에서 즐겨 듣던 7080 노래나 트롯의 음률이 항상 가슴에 와 닿는 것처럼, 미국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정신적인 지주였고 시대의 소산이었으며 역사의 흐름이었다. 필자도 이번 남부 여행을 함으로써 미국사회와 음악을 좀더 친숙하게 이해하게 되는 참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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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형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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