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참 짧다고 말한다.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는지 당겨진 화살에 비유하기도 한다. 두 달 전 12월에 뒤돌아 본 한 해는 마치 낭비해버린 한 해처럼 아까운 마음이었다. 그런 후회 섞인 마음으로 맞은 금년도 이제 두 번째 달로 접어들었다. 인생, 정말 그렇게 짧은 것인가?
나는 충청북도의 어느 외딴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은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집 뒷산에는 참나무들이 빼곡했고 왼쪽 산에는 진달래꽃처럼 키 작은 잡목들이, 오른쪽 산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무성했었다. 하루의 시작은 노란 햇빛이 서쪽 산꼭대기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었고 하루의 마침은 동쪽 산이 아래로부터 서서히 그늘이 지기 시작하여 산꼭대기에서 붉은 햇빛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동네는 삼각형처럼 생겼는데 우리 집과 다른 한 집이 바닥의 평평한 곳에 산을 등지고 자리했고 나머지 7,8채의 집들이 왼쪽 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동네의 모든 가정은 산과 산 사이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넓이가 1미터가량 밖에 안되고 깊이도 발목이 차일까 하는 정도의 ‘시냇물’ 이라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워 개울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어울렸다. 개울물로 열 집 정도되는 온 동네 사람들이 밥을 지어먹고, 등멱을 감고, 빨래를 했다. 조금 평평한 부분의 개울물을 세 곳으로 구분하여 맨 윗부분은 식수로 두 번째 칸은 세수하는 곳 세 번째 칸은 발 닦고 빨래하는곳으로 사용했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고, 글로 써 놓지도 않았는데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다 그렇게 사용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예닐곱 명은 되어서 고개 두 개 넘어 학교에 갈 때는 책보를 둘둘 말아 보따리 짐 지듯 메고 다녔다.
그 손바닥만했던 동네가 어린 우리에겐 좁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거기서 뛰어놀고 산에 오르고 개울에서 가재와 겨울 개구리도 잡았다. 조금 아랫골로 내려가 물웅덩이가 있는 곳에서는 중태기, 피리도 잡고 어떤 곳에서는 꾸구락지와 퉁사구도 잡을 때가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는 자치기도 하고, 겨울에는 썰매도 탔다. 조금 평평한 길 위에서는 땅따먹기도 했고 딱지치기도 했다. 딱지는 종이를 접어 네모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주로 비료푸대나 다 쓴 공책을 찢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종이가 워낙 귀하다 보니 딱지를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딱지치기를 해서 그 동네 아이들의 모든 딱지를 따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있어 한 사람이 다 따기는 힘들었다. 아무 쓸모도 가치도 없는 딱지에 왜 열 살 나는 그토록 욕심을 내었을까? 그곳 산골 마을의 시계침은 천천히 돌아갔고 딱지 외에는 욕심 낼 것도 없었다.
산골 마을에 살 때는 어디에서 해가 뜨고 어디로 지는지 분명히 알았다.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 남쪽, 북쪽인지 알았다. 열 집 동네의 사람들 중 누구를 만나든지 그냥 스쳐 지나는 적이 없었다. 호롱불빛도 밤의 어둠을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가을이 되어 아버지가 소달구지에 추수한 벼를 가득 싣고 오실 때는 우리가 제일 부자인 것 같았다.
장남이 농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나를 서울로 유학 보냈다. 연탄가스 냄새 기억으로 시작된 서울에서 전차도 처음 보았고 라면도 먹어 보았다. 창경원에서는 산골에서도 보지 못했던 호랑이와 곰도 보았다. 나는 서울의 냄새를 싫어했다. 십 년 남짓의 서울에서의 생활은 연탄가스 중독 말고는 별 기억이 없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이제 미국에 와 있다. 바다가 보이고 수많은 건물들이 즐비한 이곳에 살면서 나는 어디서 해가 뜨고 어디로 해가 지는지 잘 모른다.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인지 모른다. 길 건너 사는 매기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차를 몰고 나가다 마주치면 ‘하이’하고 반가운 척 인사한다. 그리고 나는 옛날 딱지에 욕심을 냈듯이 또 무엇인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딱지가 그저 종이에 불과한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알듯이, 내가 욕심을 내는 것들이 별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먼 훗날 천국에 가서야 깨우치려나?
쫓기듯 달음박질하며 살다보니 먼 거리인데도 너무 빨리 달려온 듯 싶다. 물질적, 환경적으로 이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운 미국에 살면서 왜 그리도 욕심을 내었던가. 풍요 속에서도 빈곤한 마음이었고 평화로운데도 불안하게 살아 왔다.
인생 여정이라고 우리 삶을 여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행은 달음질로만 할 수 없다. 여정 중 잊지 못할 사람도 만나고 멈춰 설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만난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자주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정겨운 대화를 나눌 친구도 찾아보아야겠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바라보고 예쁜 꽃들도 찬찬히 바라보아야겠다. 이제 세월을 좀 늑장 부리며 살고 싶다. 고되었던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의 여정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기간의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 있다. 하루하루 허락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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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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