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인사회에 변호사로서의 삶을 산 지도 30년이 흘렀다. 지금은 흔한 말이 됐지만 30년 전에는 1.5세대에 해당되는 세대가 많지 않아 나는 자연스럽게 1.5세대 또는 차세대 대표로 각인되곤 했다.
내가 처음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점에는 올드타이머 법조인이 한인사회에도 몇 분 계셨다. 문명수 변호사, 김영훈 변호사, 이광호 변호사, 김흥준 변호사, 이경동 변호사,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택장 변호사님 등. 하지만 이 분들은 지금 어느 한인 업소록에도 그 명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한인 변호사들이 별로 없으니 갑자기 한인사회 법조계의 원로급이 되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에 어느 청년이 내게 “어르신” 이라고 불러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는데 주위에 나 밖에 없어 새삼 내 나이를 깨닫게 되었다.
“한번 차세대는 영원한 차세대”로 알았던 내게 갑자기 불려지는 “어르신” 소리가 영 익숙하지 않다. 하긴 10년도 더 된 업소록의 광고 사진을 볼 때마다 사기를 치는 것 같아 교체해 보려고 찍었던 새 사진들은 하나같이 “어르신” 티가 너무 나서 아직까지 써먹질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2020년 신년을 맞아 지난 30년 법조인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리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돈만 버는 변호사가 되지 않겠다. 의사는 육체를 고치고 성직자는 마음의 병을 고치지만 법률가는 정의를 실현해 사회 부조리를 고쳐야 한다” 누가 쓴 명언인가? 물론 나다. 35년 전 법과대학에 응시하면서 나를 포장하기 위해 입학 신청서에 썼던 내용이다. 출처는 잘 모르지만 그런 비슷한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 인용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도 그런 마음이었다. 정의에 대한 관심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도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치료해야 하는 변호사의 역할은 변호사에게 돈만 버는 장사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익에 관하여 관심과 또 실제로 봉사활동을 해야한다는 의무를 요구한다.
나도 이런 이상적인 변호사 상을 그리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개업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영자와 다름없다. 때문에 다른 모든 사업과 같이 경영에 필요한 갖가지 운영비 등 수익이 필요하다.
우리가 있는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는 현재 인구 250명 당 1명 꼴로 변호사가 많다. 최근 10년 사이 로스쿨에서 배출한 변호사가 7배 이상 급증하고 있는 한국(5천명당 1명꼴)과 비교해봐도 20배 이상 많은 숫자다.
변호사가 이렇게 많으니 사건 수임에 목 매달릴 수 밖에 없는 대부분 변호사들의 하루하루는 피곤하기만 하다. 미국 법률시장이 크다고는 하나 그것은 큰 기업의 소송을 맡는 잘 나가는 대형 로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일반 변호사 일은 아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이 사회에서 존경도 받지만 또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변호사와 관련된 수많은 농담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변호사 천 명이 탄 비행기가 추락해 변호사가 모두 죽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살기좋은 세상」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천당과 지옥이 소송하면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답은 「지옥」이다. 왜냐하면 변호사들이 모두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송 천국이라는 미국에 변호사의 폐해만 있겠는가! 좋은 변호사도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정의의 편에서 억울함을 들어주고 변호해주는 인간적인 변호사, 돈 말고 진심을 쫓는 변호사, 도움이 필요한 사건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변호사 말이다.
대부분의 변호사가 가입되어 있는 미국변호사 협회 (American Bar Association) 말고도 이름부터 솔직한 ‘정직한 변호사 협회 (Association of Honest Attorney)’라는 것이 2003년에 생겼다. 소송에 의지하지 않고 분쟁을 합의로 유도하며 변호사의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관행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히기 위해 설립된 이 단체에서는 비정직한 변호사들의 리스팅을 찾아내어 성공적으로 명단에 올렸다. 그렇지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직한’ 변호사는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어 아직도 빈칸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현실 앞에 돈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답답해하며 물을 것이다. “당신이라도 하면 되잖소!”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억울한 사람들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그럼 사건의 승소를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재판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의뢰인의 입장은 어떻게 대변해야 하나요?”
인생은, 삶은, 영원히 정답이 없는 것 같다.
<
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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