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2000년대를 이야기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0년대도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하는 이야기지만 올해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파리에서는 노트르담 성당이 불탔고 남미와 홍콩에서는 분노에 찬 시민들의 시위가 잇달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연방하원에서 탄핵됐고 미중 무역 분쟁과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 불확실성에 시달리던 세계경제는 1차 합의와 영국 보수당의 압승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
올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대표적 건축가의 한 사람이었던 I M 페이가 102세를 일기로 작고했고 흑인들의 경험을 깊고 서정적으로 묘사해 노벨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과 예일대의 석학 해럴드 블룸, 도리스 데이와 앙드레 프레빈, 한국 경제 건설의 주역 김우중과 조양호, 크라이슬러와 미국경제를 살린 리 아이오코카와 폴 볼커, 테러 집단 IS의 창시자 알 바그다디, 짐바브웨를 망쳐놓은 로버트 무가베가 세상을 떴다.
9자로 끝나는 해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 2년 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면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던 위대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보다 200년 전인 1789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기치로 내건 이 혁명 역시 낡은 봉건체제를 타파하고 이성에 기초한 신세계를 건설하려는 시도였지만 결국은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와 공포정치를 거쳐 나폴레옹 독재로 끝나고 말았다. 이상 사회건설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그 100년 전인 1689년에는 영국에서 명예혁명과 함께 ‘권리장전’이 선포됐다.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왕도 법 위에 있지 않음을 천명한 이 문서는 멀리 귀족들이 힘을 합쳐 왕권을 제한한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권리장전’의 영향력은 영국을 넘어 훗날 연방헌법과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토대가 된다.
지금부터 140년 전인 1879년에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서 구석기인이 그린 벽화가 발견됐다. 훗날 피카소가 “알타미라 이후의 예술은 모두 퇴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림의 수준이 높아 당시에는 후대의 위작으로 여겨졌으며 이를 발견한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는 죽을 때까지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제 이 그림들은 구석기인이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며 인간 정신혁명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 동굴벽화 이전의 인간이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다면 그 이후는 고도의 창조력을 갖춘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9자로 끝나는 해에는 과학적으로도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1919년에는 영국의 과학자 아더 에딩틴이 개기일식을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가 진리임을 입증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해의 중력이 주위의 공간을 휘게 해 뒤에 있는 별이 보여야 하는데 에딩턴은 사진촬영을 통해 이를 확인한 것이다. 타임지가 ‘세기의 인물’로 뽑은 아인슈타인의 명성은 이때부터 확고해졌다.
1919년은 또 우주팽창의 비밀을 밝혀낸 에드윈 허블이 LA 뒷산인 윌슨 천문대에 취직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서 별들의 ‘적색편이’를 관찰함으로써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후 과학자들은 팽창 속도를 역산해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올해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하나인 아이작 뉴턴이 케임브리지대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리인 루카스 석좌교수로 부임한 지 350주년이 되는 해다. 1대 루카스 석좌교수였던 뉴턴의 스승 아이작 배로우는 제자가 자기보다 월등한 천재임을 알아보고 27세의 뉴턴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올해는 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과학서적으로 평가받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지 160년이 되는 해다. 1859년 출간된 이 책은 그 후 지금까지 생물학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끝없는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알타미라 이후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숱한 재난과 일시적인 퇴보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전진의 역사임을 의심할 수 없다. 날마다 찾아오는 소소한 어려움에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이야 최상의 환경 속에서 불만할 것이 없지만, 세계 여기저기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나라들을 보면 마냥 낙관만 할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난 왜 프랑스혁명사건을 볼때마다 프랑스왕궁은 박정희/박근혜/전두환 정부 시민혁명대는 촛불부대로 연상이되네요.
글은 이렇게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