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러데이 시즌 ‘연례행사’ 중 하나는 가족여행이다. 이맘 때면 만사 제쳐 두고, 웬만하면 캐리어를 챙겨 집을 나선다. 지난 10년 동안 늘 알뜰히 남긴 휴가와 비상금을 탈탈 털어 연말에 떠났던 가족여행은 아직까지 소중한 추억들이다.
올 가족여행은 어느 해 보다 색다르고 뜻 깊었다. 딱히 떠오르는 목적지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아내가 칼리지투어를 겸한 가족여행을 제안했다. 아들이 대입을 목전에 둔 11학년인데다 가고 싶어 하는 대학들이 누나 가족이 살고 있는 동부여서 급하게 계획을 짰다.
5박6일간의 빠듯한 일정 속에 뉴욕과 뉴저지, 보스턴, 필라델피아까지 모두 섭렵하는 강행군이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캠퍼스 투어에 모두 참여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고 주마간산의 성격도 있었지만 매 순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꽤 괜찮은 칼리지 투어였다.
미국에 있는 4,000여개 대학들에 관한 정보들은 인터넷 클릭 한 번만으로 차고 넘치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점 때문에 ‘굳이 칼리지투어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직접 캠퍼스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가능하면 꼭 해보라’고 입을 모은다. 원하는 대학들을 실제 보고 느낌으로써 자녀들에게 도전의식을 북돋워 주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어서다.
게다가 지원자와 대학과의 ‘케미’을 확인하는 데는 칼리지투어가 필수다.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대학도 직접 방문했을 때는 실망할 수 있고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던 대학도 투어를 하고 나면 ‘필’이 꽂히기도 한다. 이같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소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 실제 방문한 대학의 분위기와 다른 경우가 꽤 있었다.
자녀들도 칼리지 투어 ‘전과 후’가 다르기 마련.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첫 방문지인 뉴욕 중심가의 한 대학.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 게다가 방학 중인데도 캠퍼스는 학기중에 버금갈 만큼 북적였고 청춘의 낭만과 ‘열공’ 모드는 뜨겁기까지 했다. 칼리지투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시큰둥해 하던 아들도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음 방문 대학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보를 꼼꼼히 서치하며 캠퍼스 구석구석을 돌며 메모를 하고 게시판도 상세히 훑어보는 게 아닌가. 어떤 대학에서는 불쑥 교내 카페에 들어가 토론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살피고 몇몇 재학생들과는 대화를 나눴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캠퍼스를 촬영하며 멘트를 곁들인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이번에 방문한 대학 대다수는 아들의 실력과 스펙만으로 입학허가를 받기에는 힘겨운 ‘드림 스쿨’이다. 솔직히 많은 부모들의 칼리지투어는 조금 과장하면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대학’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어떠리. 대학 방문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더욱 진지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다.
학부모들도 칼리지투어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저 수험생 자녀를 위한 봉사나 의무감으로 하는 지루한 투어라고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편이 낫다. 직접 캠퍼스를 거닐다 보니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의 추억에 흠뻑 빠져들기도 하고 지난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모처럼 학문의 향기에 머무르는 사치를 누려보는 것도 좋았다.
어디 그뿐이랴. 칼리지투어는 입시를 앞두고 시험 준비에 액티비티에 리더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해 서먹해지던 자녀와 자연스럽게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미국의 오랜 역사를 지닌 많은 대학들과 그 도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한눈에 반했던 프린스턴 대학은 유럽의 고성에 온 듯 고풍스럽고 낭만적이었으며 건물 하나하나가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요 멋진 포토 스팟이었다.
한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칼리지투어는 갈수록 일반화되는 추세다. 이왕 떠날 칼리지투어라면 학교 투어도 신청하고 기숙사도 둘러보고 입학사정관도 만나는 등 알찬 일정으로 꾸미길 바란다. 또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드는 타주의 경우 아예 휴가 중 가족여행으로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금 서먹해진 가족을 단시간에 하나로 묶는 데는 가족 여행만한 게 없다고 한다. 칼리지투어는 일석이조의 가족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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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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