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묻어 버리기에 아까운 신부의 사목과 삶의 회고록
▶ 한국과 미국서 32년간 사목. 2세 청소년 자녀위해 영어로 출판
영문판 회고록를 출간한 정광영 신부가 가브리엘 천사상앞에 서있다
가톨릭 샌프란시스코 대교구에서 사목을 하다가 지난 2003년 은퇴한 정광영 안토니오(Anthony Chung) 신부가 “시간에 문힌 한 사제의 삶‘(’The Life of a Priest buried in Time vol 1-2) 영문판을 출간했다.
정광영 신부의 영문판 ‘The Life of a Priest buried ni Time 1-2권 책자 표지
영문판은 한국어로 이미 출간한 ‘시간에 뭍힌 한 사제의 삶 1-’권(으뜸사랑.출판)을 영어로 번역하여 2권의 책으로 낸 것이다. 이 책은 정 신부가 먼 과거 기억이 닿는 데까지 거슬러 버리기 아까운 가장 오래된 기억들과 은퇴 후 현재까지 한 사제의 사목과 생생한 삶이 기록되어 있는 회고록이다.
정광영 신부가 이번에 영어로 책을 내놓게 된 것은 피정지도 차 미국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동포들로부터자기 자녀들이 바르고 건전하게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잘 사는 것이 부모의 소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신부는 이전에도 자녀들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영어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Whom Do You Seek?’(너는 누구를 찾는가 ?) 와 ‘Religious Heart’(종교적인 심향)를 출간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도 원인이 됐다. 정 신부는 ‘종횡이 만나는 십자가’를 비롯 ‘유람선 지도신부 이야기’ ‘알래스카에서 만난 하느님’등 여러저서와 번역서를 이미 낸바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변에 있는 미국 신부와 영어권 신자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시간에 뭍힌 한 사제의 삶’ 영문판을 내기로 결심하고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조금씩 번역하여 이들 신부와 신자들에게 보여주니 좋은 반응을 보이며 내용이 너무 좋으니 계속 번역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원고의 교정까지 도와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 ‘The Life of a Priest Buried in Time’ vol 1-2로 서울 가톨릭 출판사(으뜸 사랑)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책를 읽은 신부님들의 반응은 이구동성으로 장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젊은 청소년과 사제성소를 찾고자 고심하는 젊은이들, 젊은 사제와 신학생은 물론 일반 신자등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말을 모르는 나이 어린 자녀에게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선물로 한권씩 사 줄것을 바라고 있다.
정광영 신부(왼쪽서 3번째)가 책을 출간 후 지난 11월 서울 천호동성당에서 가진 출판 기념미사. 왼쪽부터 임승철 주임 신부, 이한택 주교, 정광영 신부, 박정일 주교
정광영 신부의 영문판 회고록에는 사제가 된 배경과 한국과 미국에서의 사목,은퇴이후 삶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광영 신부는 4살 때 익사할 뻔 했든 물놀이 사건, 일본 강점시대 9살때 초등학교 교정에 놓인 신사를 참배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아리에 멍이 덜 정도로 매 맞은 일등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구대교구에서 사제 서품,성당 건축
정 신부는 11살때 45세의 아버지를 잃었는데 부친의 별세가 자신을 사제의 길로 안내한 작은 씨앗이 되었다. 13살 때 동족상잔의 비참했든 6.25전쟁을 경험했다. 피난을 가면서 육중한 탱크를 앞세워 북진하는 미군들을 처음 본 그는 미국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조국이 미국에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미국에 살고 있다.
19살 때 처음으로 가톨릭교회를 알게 되었으며 22살에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약 3년간 군 생활을 한후 장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주님의 뜻인 사제의 길을 선택했다. 27살에 신학대학에 입학, 8년간 소정의 과정을 마친 후 1971년 10월 23일 35세에 대구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보좌 생활 1년을 거친후 교도소 사목을 통해서는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허 대위 살해사건’의 살인범 서석황을 깊은 회개로 영세를 받도록 한후 사형직전 2개 안구를 기증하도록 했다. 이 사건은 교도소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일로 ‘벽창 야화’란 연속극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1977년부터 7년을 예정했던 대구 효목동 성당을 1년 만에 건립을 완공했다.
밴쿠버와 샌프란시스코 성당에서 사목
1989년 초 로마로 유학 중 캐나다 밴쿠버 한인 가톨릭 공동체를 재건시켜달라는 주교의 요청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밴쿠버에서 사목을 했다. 캐나다에서 밴쿠버 한인가톨릭 공동체를 모범 성당으로 변화 시킨후 5년 사목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한인 가톨릭 성당으로 이동 발령이 났다.
샌프란시스코 대교구로 와서 1986년 5월 첫 번째 주일 샌프란시스코 한인 가톨릭 공동체를 위해 첫 미사를 봉헌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대교구내에서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모범성당으로 급부상했다. 사목기간동안 모금운동을 통해 성당안과 밖의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완전히 새 성당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1989년 10월 대지진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Holy Cross 한인성당 건물이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1995년 교구에서 완전히 폐쇄 시켰다. 홀리 크로스성당이 문을 닫은후 현재의 성 마이클 성당을 천신만고 노력 끝에 샌프란시스코 대교구로부터 얻었다. 이때의 감회는 나의 일생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감사 그 자체였다.
1996년에서 2002년 12월까지 현지 미국 사목을 하다가 2003년 1월1일자로 샌프란시스코 대교구의 사목 일선에서 은퇴를 했다.
은퇴후에는 1990-2016 사이에 주님을 유일한 동반자로 미 대륙 횡단을 4번이나 했다. 개인 피정을 하듯이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만드는데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2006년에서 2016 까지는 유람선 지도신부가 되어 유람선을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주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과 화려한 도시들을 보면서 역시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과 섭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광영신부의 영문판 책자에는 위와같이 세월에 그냥 묻어 버리기에 아까운 내용들이 2권의 책에 소상하게 담겨 있다.
이한택 주교는 ”이 책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인상은 정 신부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이라고 적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교구 마이클 패단진스키 총대리는 ”책에는 정 신부의 어린시절부터 성당 건축등 왕성한 사목활동을 년대적으로 잘 소개하고 있다“면서 ”주님의 포도농장에서 열심히 산 사제의 신앙과 그의 삶안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될 것“이라면서 책의 구독을 추천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가톨릭대학교 워렌 홀래란 전 교수도 ” 신앙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이룬 모범 사례가 문화적인 배경에 상관없이 깊은 감동을 줄 것“으로 평을 하고 있다.
정광영 신부는 이 책은 장래를 고민하는 2세 청소년과 사제성소를 찾고자 고심하는 젊은이들게 유익한 선물이 될것이라면서 자신있게 책의 구독을 권유하고 있다.
저자 정광영 신부 연락처: Chungky3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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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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