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을 며칠 앞 뒀던 지난 2017년 5월 어느 날 여의도에서 만났던 지인은 2년 6개월 만에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요직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지인은 어느 새 침을 튀겨가며 현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쓴 소리꾼’이 되어 있었다. 조국 사태의 쓰나미 속에서 더 이상 현 정부를 두둔할 자신도, 신뢰도 사라지고 말았다며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려 애썼다.
서울서 만난 친여권 성향의 한 전직 교수의 목소리에도 날이 서 있었다. 철썩 같이 신뢰하고 지지해왔던 진보 인사들이 최근 보여준 위선적인 민낯이 당혹스럽고 진보 세력에게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좌절감과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고, 현 정부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서초동과 광화문을 수십만 인파로 메웠던 진보와 보수의 광장 전투는 사그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11월 한국은 여전히 ‘조국 사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울서 만난 인사들의 날선 비판은 3개월간 이어진 ‘조국 사태’가 한국 사회에, 특히 현 집권세력을 포함한 진보 진영에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져주고 있는 듯 했다.
“한국의 진보는 과연 도덕적인가?” “기득권이 돼버린 진보에게 도덕이란 무엇인가,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지향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진보 진영의 도덕성이 화두로 떠오른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현정부의 핵심 지지 세력에게 조국 사태는 진정한 검찰 개혁와 정의를 구현하려던 의인 ‘조국’의 억울한 고난이자 반개혁 세력의 몸무림 치는 저항으로 여겨졌고,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쾌재를 부른 보수 세력에게는 ‘위선적인 진보 인사의 당연한 몰락’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이보다는 한국 사회의 주류로 부상한 소위 ‘기득권 진보’의 도덕성 문제에 의문을 던졌고, “진보는 도덕적인가”라는 근본적인 화두를 던진 것이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도덕성이 원래 보수의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모름지기 도덕이란 것이 기존 가치들의 결집인데다 ‘체제안정‘을 추구하는 보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변화를 추구하며 도전하고 저항하는 진보의 속성상 도덕성이라는 것이 진보의 덕목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와 정경유착과 싸우며 부패한 세력과 맞서야 했던 한국의 진보는 ‘도덕성’을 유일한 무기로 앞세운 역사를 가지고 있어 ‘도덕성이 진보의 덕목이 아니다’는 지적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극단적이다.
문제는 부패한 군사정권과 맞설 당시 가진 것이 없어 거리낄 것이 없었던 진보가 집권경험을 하면서 돈과 권력을 모두 쥔 사실상의 기득권 세력의 일부로 편입돼 도덕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조국 사태는 한국의 진보와 현 집권세력이 처한 도덕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일부 진보적 학자들은 ‘도덕을 진보와 동일시’하는 프레임이 보수의 함정이며, 진보가 도덕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평등과 공정, 정의를 내세우는 진보와 현 집권세력에게 도덕은 여전히 유효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
조국 사태를 법적 책임 유무로 판단해 사태를 최악의 국면으로 악화시킨 주류 진보와 집권세력의 오판도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오만과 독선도 치명적이다. ‘정의’라고 우기며 독선과 오만으로 일관하는 한 이미 정의가 아닐 수 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정의라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잡은 후 급작스레 태세를 전환해 얼굴을 바꾸는 ‘내로남불’에서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의 ‘우격다짐’이 나타난다. 수치스러움을 통감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수개월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조국 사태가 남긴 교훈일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해 개선한 장군에게 노예로 하여금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를 속삭이게 한 로마의 관습에서도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쭐대거나 오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집권 초 80%까지 치솟던 지지율이 반 토막 나는 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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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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