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감한 개방으로 성공한 아일랜드, 중 개입으로 자유박탈 우려 커지며
▶ 금융허브 자리 위태로운 홍콩처럼...자유는 경제번영의 필요충분조건
16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스페인을 장기 통치하며 스페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절대군주 펠리페 2세는 종교개혁을 인정하지 않고 가톨릭의 수호자이자 맹주를 자처하며 신교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그 결과 많은 유대인 자본가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스페인의 지배를 받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던 네덜란드로 이주해 네덜란드 발전의 주역이 됐고 결국 네덜란드는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그 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제도, 증권거래소, 근대적 은행 등 자본주의의 기틀이 되는 수많은 제도혁신이 네덜란드에서 이뤄졌다.
아울러 네덜란드인들은 지리상의 이점을 활용해 바다의 마부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해외무역에 힘쓴 결과 해상무역의 강자로 일어섰다. 일본에 총포를 비롯한 각종 근대문물을 전해 줘 일본 근대화의 바탕을 놓아준 것도 네덜란드인들이었다. 네덜란드는 오늘날에도 작지만 잘 사는 무역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스페인은 네덜란드를 도와주던 영국을 제압하려고 투입한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패하면서 펠리페 2세의 재위 중에 국력이 급속히 약화해 강대국 반열에서 이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오랜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열악한 자연환경 등으로 아일랜드 돼지라고 경멸받던 유럽의 열등생 아일랜드는 21세기 진입 직전부터 외자유치를 겨냥해 실시한 과감한 개방과 경제자유화 정책에 힘입어 정보기술(IT) 산업을 위주로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해 단숨에 유럽의 손꼽히는 부국으로 올라서며 1인당 국민소득에서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을 제쳐 버렸다. 오늘날 아일랜드의 경제자유도는 세계 제일로 평가받고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초기 조정은 안보 등의 이유로 민간의 해외무역을 금지하는 해금령을 실시했다. 그 결과 동남아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자본가들이 대거 동남아로 이주해 버렸다. 오늘날 화교들은 동남아 대부분 국가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아편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엘리엇 제독은 강화의 대가로 홍콩 할양을 요구해 뜻을 관철했으나 오히려 쓸모없는 작은 돌섬을 손에 넣었다는 영국 정부의 불만에 따라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나중에 홍콩은 영국의 아시아 무역 교두보의 역할을 하며 세계 최고의 자유무역항으로 발전함으로써 결국 엘리어트 제독의 안목이 입증됐다. 홍콩이 동아시아 무역 허브 기능의 자유무역항으로 성공하자 싱가포르가 이 모델을 본받아 성공을 이뤘다.
최근 범죄인 인도협정을 계기로 촉발된 홍콩인들의 격렬한 시위의 근저에는 자유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다.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협정 공식 폐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홍콩인들의 시위는 대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의 회복을 겨냥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중국 정부의 사회통제 강화와 자유 박탈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혼란이 가져올 국제사회의 신뢰 상실과 경제적 손실을 홍콩인들이 모를 리 있겠는가. 그러나 당장의 이익보다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며 자유를 잃으면 결국 경제자유가 핵심인 홍콩의 경제도 온전할 수 없다는 점을 홍콩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예상대로 부작용은 나타나고 있다. 자본이 홍콩에서 대거 이탈해 싱가포르로 옮겨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순간에도 대륙인들을 포함한 많은 자산가들이 재산의 싱가포르 이전을 궁리 중일 것이다. 많은 한국인 자산가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의 국제금융센터 지위를 홍콩으로부터 빼앗고 싶어하는 싱가포르로서는 결정적인 행운을 잡은 셈이다.
이 사례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자유의 중요성이다. 자유는 그 자체로도 인간 행복의 절대적 필요조건이기도 하지만 경제 번영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경제활동의 자유만 주어지면 경제는 저절로 잘 돌아가게 돼 있다.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돈을 들여 이것저것 열심히 챙기지 않아도 되는 매우 간단한 방법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물론 작은 경제들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현재의 최강국인 미국의 발전도 결국 자유가 가져다준 것이다. 경제를 키우는 데는 특별한 약이 필요 없다. 자유를 주면 된다. 경제를 죽이는 데도 특별한 약이 필요 없다. 그저 자유를 빼앗으면 된다. 우리 기업들이 한사코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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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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