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초 청와대에서 열렸던 기업인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환경이 대내외적으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 부회장은 “어려울수록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는데 실제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감소와 미국·일본·중국 반도체 업체 견제, 삼성전자를 겨냥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입 규제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 언론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발언을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삼성전자 신경영을 선포하며 말해 화제가 됐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발언 못지않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자산규모 1,2위 은행인 뱅크오브호프와 한미은행이 이번 주 각각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한인 은행권의 어닝시즌이 시작됐다.
뱅크오브호프는 올 3분기에 4,259만달러 순익(주당 34센트)을 내며 전 분기와 같은 수준의 주당 34센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년 동기인 2018년 3분기의 4,638만달러 순익(주당 36센트)과 비교하면 액수 기준 8.2% 감소했다. 한미은행은 3분기에 1,238만달러 순익(주당 40센트)을 냈지만 이 역시 전년 동기의 1,608만달러 순익(주당 50센트)에 비해 23.0%나 줄었다.
이같은 상황은 다른 한인은행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올해 들어 분기별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거나 증가세가 둔화되는 트렌드가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까지 수년간 매년 분기별로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뤘던 자산, 대출, 예금 부문도 올해 들어 한 자릿수로 감소하는 등 외형 성장세도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얼핏 보면 한인은행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상황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난해부터 적용된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율 부담 감소 효과가 실적 악화를 만회해주고 있다. 인하된 기본 법인세율은 21%로 이전에 비해 거의 두 배 이상 낮아졌기 때문이다.
은행은 경제 동향 여파를 가장 민감하게 받는 업종으로 정부의 규제와 감시 또한 어느 업종보다 강력하다. 이는 은행이 시민들의 예금을 받고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은행처럼 대출을 해주지만 개인 예금을 받지 않는 팩토링 업계의 경우 분기별로 실적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이 상장이 되면 비상장 은행에 비해 연방·주 감독국은 물론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의 한층 강도 높은 감시와 감사를 받게 된다. 정부기관에 제출하고 공시해야하는 각종 서류와 이에 필요한 직원 등 ‘법 준수비용’(compliance cost)도 어느 업종에 비해 높다. 부실대출이나 자산건전성이 미달되면 가차 없이 폐쇄 조치된다. 한인 은행권도 지난 2008년~2012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미래은행과 아이비 은행이 강제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한미은행이 지난 2분기에 특정 고객의 4,070만달러 규모 대출에 대해 감독국과의 협의아래 대손충당금을 대폭 쌓으면서 2분기 순익이 직격탄을 맞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부실대출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여기에 한인은행들이 치열한 예금고 경쟁을 벌이면서 이자비용이 증가해 수익의 핵심 지표인 순이자마진(NIM)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한 때 4%를 훌쩍 넘었던 NIM은 이제 3%대로 하락했다.
한미은행의 올 3분기 NIM은 3.36%, 뱅크오브호프의 NIM은 3.25%로 낮아졌다. 무엇보다 한인은행들은 주류 대형 은행에 비해 자산 규모에서 많이 차이가 나고 기업 대출을 할 수 있는 노하우와 전문 직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부동산 담보 대출이나 SBA 론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인 금융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비롯,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계속 나빠지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인 은행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규모 적자를 냈고 몇몇 은행은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았지만 이후 경제 호황 속에 수년간 순익기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지적한 대로 한인 은행권에게도 ‘진짜 실력’을 발휘할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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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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