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3차 정상회담’열리더라도 비핵화 목표·로드맵 가능성 희박
▶ 북핵합의 성과 높이려는 트럼프 딜 수락하면 한국은 핵위협 노출
북한이 마침내 미북 실무회담에 나왔다. 지난 6월 말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수주 내 하겠다고 약속한 이후에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안 나오더니 자기들이 제시한 연말 시한을 얼마 안 남겨놓고 회담장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8시간 반 만에 회담이 끝난 후 북한 측 협상대표인 김명길은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면서 “협상 실패”를 선언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다시 한 번 실망으로 끝이 났다. 북핵 문제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것이다. 아니 더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볼턴 보좌관은 인격적으로나 업무 스타일 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우리나라 같은 동맹국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북핵 문제만은 확고한 원칙을 견지함으로써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오죽하면 북한이 그를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며 어떡해서든 배제시키려고 안간힘을 썼겠나. 그런 볼턴이 드디어 경질됐으니 북한에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 축구로 치면 ‘노 마크 득점 찬스’가 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과연 이 기회를 어떻게 쓰려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재선을 목표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그는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 자신의 최대 외교 치적으로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동결시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았으며,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데려오고 미군 유해를 송환시켰음을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11월 선거일까지 북한이 가만히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높은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됐을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의 대북압박”을 외치면서 손에 쥐었던 카드가 2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김 위원장의 손으로 옮겨가 있는 것이다. 공수전환이 이뤄진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북한이 실무회담에서 호락호락하게 나오리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다. 이제 북한은 4월 제시했던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산음동 미사일 생산기지에서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킬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마지막 기회’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3차 정상회담을 제안한다면 본격적인 재선 레이스를 앞두고 탄핵의 그림자까지 드리운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3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내놓을 제안이 무엇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안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비핵화 정의와 이행로드맵 합의도 그 안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 다시 들이밀고 싶겠지만 하노이의 실패가 떠오를 것이다. 북한이 추가로 내놓을 제안으로 모호한 개념의 ‘핵물질 생산 전면 동결’ 같은 것이 상정 가능하다. 물론 이를 위한 신고·검증·시한은 후속협상으로 미루는 조건이다.
대신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다.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안보리 제재 해제는 물론 소위 체제안전보장조치를 덤으로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이 이미 제안한 종전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니 연합훈련 완전 중단이나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문서에 넣자고 나오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α’는 과거의 핵 합의를 뛰어넘는 엄청난 성과로 포장돼 캠페인 슬로건으로 활용될 수 있고,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를 이룬 노벨평화상감 업적으로 둔갑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이 드는 훈련이나 항모·전투기 전개 중단은 자신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제의다. 안 받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목표도 로드맵도 시한도 없는 이 딜을 하는 순간 북한 비핵화는 사라지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며 한국은 북핵 위협에 영원히 노출된다. 북핵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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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동아대학교 계약교수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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