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을 바라보는 지인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두 자녀 모두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고 나니 그제야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더라?”라는 생각이 들고 문득 배움에 대한 갈망이 솟구치더란다. 캠퍼스 라이프가 있는 멋진 대학생활까지는 욕심낼 수 없었지만 당당히 사이버대학에 등록하고 만학도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시간표를 짜며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하다 보니 인생이 달라진 것 같다”며 “배움이 이렇게 큰 기쁨인줄 예전에는 몰랐다”고 전한다. 그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어려운 이웃들의 카운슬러가 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때마침 주류 언론에 나온 48세의 싱글맘 대학생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주에 사는 이 여성은 신문사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감원된 이후 삶의 좌표에 대해 고민하다 중도에 포기했던 캠퍼스 복귀를 결정했다. 언어병리학자가 꿈이라는 그는 다시 대학생이 된 이유에 대해 “학위 없이 아이와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할 만큼 돈을 버는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더라”며 현실적 이유를 설명하고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엄마로서, 대학생으로서 두 가지 삶을 병행하기 위해서 고군분투 중이다. 매일 몇 시간씩 버스와 페리를 갈아타고 등교하며 연방 학생대출을 받을 만큼 빡빡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8살 아들은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에 맡기고 있다.
‘배움에 때가 있다’라는 말이 꼭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 미국에는 ‘때가 지나’ 학구열을 불태우는 ‘늦깎이 대학생’이 의외로 많다. 자녀가 있는 부모가 대학에 다니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통계에 따르면 거의 500만 명의 대학생들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전체 학부생의 26%를 차지하는 수치다. ‘부모 대학생’ 중 380만명은 자녀와 함께 대학에 다니기까지 한다. 또 이들 중 70%인 270만명은 엄마, 30%인 110만명은 아빠다. 엄마들의 학구열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에서는 정부와 대학, 기관 등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부모 대학생’을 지원한다. 커뮤니티칼리지나 기술학교의 경우 캠퍼스 내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기도 하며 애리조나주립대, 오리건주립대, 유타주립대, 스탠포드대학 등과 같이 차일드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4년제 대학들도 꽤 된다. ‘부모 대학생’에 특화된 그랜트나 스칼라십, 재정보조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 대학생’ 입장에서는 아직도 이런 지원들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라면 가정과 학교생활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제 등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수퍼맘과 수퍼대디가 되어야 한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경우 차일드케어는 냉혹한 현실이다. ‘엄마 대학생’ 중에는 싱글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높고 부부인 경우라도 배우자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지원도 태부족이다. 연방 교육부가 저소득층 부모 대학생의 학위 취득을 독려하기 위해 운영하는 차일드케어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전체 신청자 중 절반은 대기자 명단에 올라야 한다.
이러다 보니 결의에 찬 각오로 시작한 대학생활을 다시 포기하는 부모 대학생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중퇴비율은 일반 대학생에 비해 두 배나 높고 6년내 학위를 취득하는 비율도 30% 정도에 머물고 있다.
현재 캠퍼스 내 차일드케어 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은 대략 1,200여개로 추산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이들 센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 지역에서 차일드케어 비용이 수업료보다 비싼 현실을 감안할 때 캠퍼스 내 보육시설 확대는 부모 대학생들의 등록률을 높이고 중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 솔루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부모 대학생’의 학업 열정은 더 뜨겁다. “자녀를 둔 늦깎이 학생들은 지각과 결석이 거의 없어요. 또 학생 대부분이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열중하죠. 대부분 겸손하고 진지합니다. 불타는 학구열에 비해 실행의 속도가 다소 느리긴 하지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묻고 또 물어서 되도록 실수를 줄이려고 하는 연륜도 느껴집니다.” 한 한인 교수가 전한 부모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 학업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들은 배움에 대한 갈망을 머릿속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다. 시간과 돈 등 여러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부모 대학생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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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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