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산책] 팝 명곡을 찾아서 IL CIELO IN UNA STANZA (노래:Mina)
한국에 이태리 대중가요인 칸쏘네가 들어 오기 시작한 것은 1959년 부터이다. Arida Cheli 가 부른 ‘Amore Mio ’(Sinome Moro) 가 첫 번째 사랑을 받았다. 이 인기 영향을 받아 태평양 화학이 자시 화장품 상표를 아모레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온 노래가 바로 ‘미나’ 가 부른 Il CIELO In UNA Stanza 이다. ‘미나’의 애수가 가득찬 다이나믹한 목소리가 이 노래와 잘 어우러져 발표되자마자 이태리 가요차트에서 14 주간 넘버원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1960년 부터 향후 10년 동안 끊임없이 팬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이며 더더구나 이 음악이 이태리 영화 ‘Appuntamento a Ischia’ (푸른 파도여 언제 까지나) 에 삽입되어 순풍에 돛 달듯이 인기를 몰아갔다. 또한 ‘미나’가 직접 영화에 출연하여 노래를 불러 더욱 팬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필자는 이 옛날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20년 동안 수소문 한 결과 호주에 사시는 어떤 팬이 소장하고 있는 DVD 를 구입하여 2017년에 감상하면서 영화 보는 동안 젊은 날의 옛 추억에 젖어 한없이 즐거웠다.
이 노래는 ‘Gino Paoli’ 가 1959년 어느날 어떤 여인과 조그마 한 호텔에서 One Night Stand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후 호텔 자주빛 천장을 바라본 순간 문득 ‘사랑 이란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싹튼다’ 란 생각이 들어 펜을 잡고 노래 말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신비한 공기 어디에서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마술같은 현상 그리고 느끼는 묘한 이 느낌 난 보잘 것 없는 인간 이지만 나의 영혼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는 생각이 들어 가사에 맞춰 작곡을 하여 노래를 부를 가수를 접촉하기 했다. 이태리 가수 ‘Julia De Palma’나 ‘Miranda Martino’ 에게 줄 생각 이었지만 둘다 레코딩을 거부하여 할 수 없이 갓 데뷔한 ‘미나’에게 요청을 했지만 그녀 역시 마음 내키지 않자 작곡자는 그녀를 설득시키기 위해 직접 ‘미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 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멜로디에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멋들어지게 불러 녹음을 마쳤다. 특히 엔딩 파트인 ‘per me ma e ce ’ 에서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면서 끝을 맺어 이 노래를 더욱 운치있게 한다. 레코드는 발매 하자마자 이태리 뿐 만 아니라 전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나’의 선풍을 일으켰다. 1960년 초에 영화 ‘푸른 파도여 언제 까지나’가 한국에서 상영되어 음악과 함께 젊은 층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미나’ 는 1940년 이태리 ‘크레모나’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3옥타브 음역을 지닌 그녀는 이미 19세 때 텔레비전에 출연 할 정도로 재능을 타고났다. 그녀의 이름은 ‘Mina Mazzini’ 이지만 대개 ‘Mina’ 라고 불리운다. 그후 이 노래의 성공으로 79 개의 레코드 앨범을 발표했고 71개의 힛트 송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에겐 두가지의 별명이 있다. 하나는 ‘Queen Of Screamers’ 또 하나는 ‘크레모나’의 호랑이‘ 라고 불리울 정도로 데뷔 이래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창법으로 빠른 록 템포의 음악을 불렀다. 그녀는 이태리 최초의 여자 록가수로서 주목 받은 가수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항상 행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1962년 유부남 배우인 ’Corrado Pani‘ 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기를 가졌다. 천주교 종교 문화가 지배 하는 이탈리아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스캔들이라 전 이탈리아가 충격을 받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문제 외에도 그녀는 눈썹을 밀고 머리 염색을 하고 공공 장소에서 흡연을 하며 그리고 특히 몸을 흔들며 노래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여 이탈리아 방송협회는 그녀에게 TV 와 라디오 방송 출연 정지라는 가혹한 징계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레코드 판매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 후 1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팬들의 성화로 징계 조치를 해제 해야 만 했었다.
처음에는 이 노래를 취입하겠다는 가수를 찾기 어려웠지만 ’미나‘의 성공 이후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미나‘는 처음 취입한 1960년 이후 1969, 1988 년 다시 레코딩 했지만 그녀의 매력이 담뿍 담긴 1960년 녹음한 오리지날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녀가 전신의 혼을 다하여 부른 이 노래는 지금까지 이태리 칸쏘네 뮤직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힌다.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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