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코미디언 랜들 박(45)은 점잔하고 겸손했다. 엷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 수줍어하면서 차분하고 신중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배우라기보다 잘 아는 친한 이웃사람 같았다.
사샤(앨리 웡)와 마커스(랜들 박)는 어릴 적부터 천상배필처럼 여겨졌던 한 쌍. 이들이 헤어진 후 15년 만에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의 불꽃이 점화하는 로맨틱 코미디 ‘우리 사이 어쩌면’(Always Be My Maybe)에 나온 랜들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랜들은 2014년 영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으로 나왔으나 영화를 개봉하면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배급사인 소니가 극장 개봉을 취소했었다. 그는 현재 ABC-TV의 인기 시트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서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중국음식점을 차린 대만계 이민가정의 가장으로 출연중이다.
요즘 들어 이런 로맨틱 코미디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 앨리와 나도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으로 인해 영감을 받아 선뜻 응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꽃과도 같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앨리와 나는 오래 전부터 함께 우리의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를 만들려고 논의해왔었다. 우리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의 전통을 이을 수 있다는 것이 기분 좋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기억되는 장면이 무엇인가.
앨리와 내가 차 안에서 나눈 첫 섹스장면이다. 각본에는 그 장면이 단 두 줄의 대사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 찍는 데는 여러 시간 걸렸다. 따라서 우린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었는데 감독도 가만 내버려두더라. 그 장면을 비롯해 앨리는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날 웃겨 촬영 중에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들었다.
김정은을 연기한 사람으로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는가.
아이고머니나 내가 그런 조언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설령 내가 조언을 한다고 해도 김정은은 ‘저 친구 누구야’라고 비웃을 것이다. 여하튼 난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
당신과 앨리가 당신의 고물차 안에서 나눈 키스는 보아하니 두 사람의 첫 프렌치 키스 같은데 당신의 첫 번째 키스를 아직도 기억하는가.
기억하는데 별로 흥분되는 키스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내 첫 여자 친구와 우리의 데이트 장소였던 공원의 나무 밑에서 키스했다. 겁나고 온 신경이 곤두섰지만 기분 좋았다.
각본을 앨리와 함께 썼는데 협조가 잘 됐는지.
우린 16년간의 친구 사이다. 우린 UCLA대 동문이고 난 대학시절 연극반 창설자 중의 하나다. 내가 졸업 후 앨리가 연극반에 합류했다. 그래서 우린 그 연극반에 있는 사람을 통해 서로 알게 됐다. 그 후로 우린 코미디그룹에서 함께 일했고 창작을 하면서도 늘 협조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쓸 때도 우린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생각이 같을 때가 많았다. 같은 배경을 지닌 데다 오랜 지기 사이여서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즐겁고 쉽게 작업했다.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를 타인종이 보면서 무엇을 배우길 원하는가.
그들이 우리가 맡은 인물들을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과 문화가 다른 점이 서로 인간적 수준에서 일체감을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단지 사람들이 우리의 입장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아시안 영화라고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요리사로 나오는 앨리가 만드는 음식이다. 음식이 굉장히 많이 나오면서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가.
아시안이 아닌 역이 주어지기도 하는가.
내 생애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난 일이 하고 싶어 그 역이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상투적인 것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때론 아시안이나 아시안-아메리칸이 아닌 역을 위해 썼다가 내게 주어지는 것도 있는데 난 그런 것에 상관 않고 역만 좋다면 수락한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두 연인이 결혼해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하고 끝나는데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들과는 달리 앨리와 내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새 삶의 시작에 서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둘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둘은 아직도 다뤄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매우 다른 사람으로 서로 각기 인생의 다른 지점에 이르면서 영화가 끝이 나지만 흔쾌히 함께 나아갈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나는 마음에 든다.
실제 사랑이란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분홍빛 일색이 아닌데 당신도 삶에서 그런 것을 느끼는지.
물론이다. 모든 관계는 잘 지켜나가려고 노력할 때만 지속될 수가 있다. 나도 내 아내와의 관계에서 우여곡절을 여러 차례 겪었다. 우린 결혼 생활을 잘 지켜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부부관계란 무언가 작은 것으로도 서로가 맞는 짝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자라온 배경으로 인해 서로가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단 부부 사이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고 본다. 따라서 좋은 관계란 이 영화에서와 같이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유지된다고 본다.
영화에서 사샤는 성공한 부자가 되고 마커스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데 당신의 실제 삶은 어땠는가.
난 그런 마커스와 여러 면에서 진짜로 일체감을 느낀다. 30대가 되어서도 부모 집에서 살았다. 따로 살다가 일이 제대로 안 풀려 부모에게 돌아간 것이다. 배우가 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처음에 실로 많은 고생을 했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승진을 하는데도 난 한동안 백수로 지냈다. 그 때 난 자기 회의에 시달리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난 내가 사랑하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 그런데 난 이 일이 잘 안 돼도 그에 대비할 준비가 돼 있다. 왜냐 하면 배우란 직업은 실패할 경우가 많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시안 배우로서 겪은 고통스런 경험은 무엇인지.
언젠가 TV쇼에 단 하루만 나오는 역에 오디션을 했을 때였다.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니나 그때 내게 있어 그 역에 뽑힌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 오디션에 나가 잘 했는데 알고 보니 역을 놓고 나와 내 친구인 에디 신이 겨루게 된 것이다. 에디와 나는 지금도 친구 사이로 그는 나보다 훨씬 훌륭한 배우다.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오더니 에디에게 역이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난 내 침실에서 울었다. 그 때 내게 있어서 그 역은 정말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왜 그런 작은 일로 그렇게 감정적이 됐어야 하는가 하고 자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엔 정말로 큰 충격이었다. 그 후 난 배우란 직업을 포기할 생각마저 했다. 난 이제 끝났어. 너무 힘들어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이 기쁠 뿐이다.
김정은을 연기 했을 때 패트 수트(뚱뚱한 모습을 위해 입는 옷)를 입었는가.
그렇다. 처음에 분장사들이 내 얼굴도 보다 크게 만들려고 했다가 중단했는데 좌우간 나는 뚱보가 되기 위해 촬영 전에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음식을 먹었다.
그 역을 맡은데 대해 한국계 미국인 시회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았는가.
처음에 많은 반발을 받으리라 생각했는데 직접적으로 강력한 반발을 받진 않았다. 오히려 응원을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 그에 관해 논의했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역을 맡아도 되리라고 확신했다.
혹시 북한 측의 보복이라도 있을지 걱정했는가.
북한 측이 소니사에 대해 공갈을 치긴 했지만 난 내 생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앨리가 특급 요리사로 나와 칼질을 하면서 음식을 마련하는데 보기에 진짜 같았는지.
닭을 칼로 자르는 장면에서 어떻게나 긴장을 하던지 오전 내내 ‘아이고 이걸 어쩌나. 보기에 진짜 같아야 하는데’ 하면서 쩔쩔 매더라. 그러나 결과는 좋았고 그 닭은 진짜 생닭이었다. 그러나 우린 그 닭요리를 먹진 않았다. 다른 요리사가 만들어준 것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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