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LORD is near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
양심의 가책(苛責). 양심의 심한 꾸짖음. 그래서,
가슴이 뜨끔하게 찔리는 아픔! 우리말론 다들 쉽게
쓰는 표현, “양심의 가책,” 영어론? 예문 하나: I had
a pang of conscience, after lying to her. 그녀에게
거짓말 한 뒤, 양심의 가책이 일었다. “어 ‘팽’ 어브
컨~션스.”
‘팽’[pang]은 갑자기 격렬하게 일어나는 고통.
극심한 배고픔에서 오는 통증에 가까운 갑작스런
‘공복통’을 ‘hunger pangs’라고 하죠. 몸의 아픔도
‘pang’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격심한 고통 또한
pang. 그래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겪는 극심한
고통이 다름아닌 “양심의 팽!”
그런데, 진짜 ‘속 상하게’ 쓰리고 아픈 나머지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면 더욱 긴박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contrition’[컨트리~션]이란
고농도 함축어. 본래 뜻은 ‘broken to pieces’
즉 산산조각 부서져 깨어진 ‘crushed’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 “A contrite heart is a heart
broken to pieces.” 깊이 뉘우치는 마음이란
곧 산산히 부서져 내린 마음. 그렇게 산산조각
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 ‘컨트라~잇ㅌ’의
명사형이 바로 ‘contrition’[통회(痛悔)]!
=============================
The LORD is nigh unto them that are
of a broken heart; and saveth such
as be of a contrite spirit. [KJV]
주(主)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통회하는 영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
=============================
그러길래, KJV[King James Version]은, NASB
번역과 달리, ‘crushed’ 대신 ‘contrite’를 쓰고
있네요. 구약성경 시편 34:18. 유다 왕 다윗의
가슴 아픈 시어(詩語). 장차 오실 메시아의
가문으로 거룩하게 점지된 다윗 왕의 시편.
성군(聖君) 다윗 왕. 일찌기 앳된 목동 시절, 다들
겁내던 거인 적장을 오롯한 믿음과 단순한 돌팔매로
처치했던 “다윗과 골리앗” 스토리의 주인공. 갖은
고초를 다 겪고 마침내 유다의 왕이 되어 40년 간
나라를 다스렸던 다윗 왕. 하지만, 그에게도 진정
“통회(痛悔)하는 영(靈)”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간구해야만 했던 가슴 시린 사연 또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사무엘/하 11:2]
이렇게 시작되는 “다윗과 밧세바” 간음 스토리.
충성하며 전쟁터에서 싸우는 부하 장수의 아내를
겁간(劫姦)하고, 마침내 사태 수습차 그 장수를
적군에 의해 죽도록 만드는 사악한 왕! 세상은
속여도 주님의 대언자를 속일 순 없는 법. 결국,
“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그렇게 진솔한
고백과 통회(痛悔)로 간신히 회생하는 다윗.
=============================
The LORD is nigh unto them that are
of a broken heart; and saveth such
as be of a contrite spirit. [KJV]
주(主)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통회하는 영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
=============================
다윗 왕만큼 온갖 체험을 통해 ‘주님의 손길’을
깨닫고 의지하며 산 이가 또 있으랴.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시편 23:1]
이토록 명징(明澄)하게 주님을 알던 다윗 왕도
결국 통회(痛悔)하며 비는 체험을 피해 갈 순
없더라?
살다 보면 종종 겪는 통회의 느낌. 사실, 좀 더
자주, 아니, ‘늘 깨어’ 통회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영어 단어 ‘contrition’을 묵상하면서 ……
서편 언덕 불그스레 지는 해를 벗삼아 붉은 와인
몇 잔. ‘돌아온 탕자’의 ‘contrition’ 기분(氣分) 충만,
어느덧 9월 초 가을 기운(氣運)이 완연합니다.
Cheers!
<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박사 / 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