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기술로 사회가치 추구 기업, 정부·기업·민간 협력, 발굴·지원... ‘임팩트펀드’ 5,000억 조성 추진
▶ 매출보다 정성평가로 투자 결정, 가치평가·성장지원 인프라 다져...소셜벤처 생태계 경쟁력 키워야
지난 8월 29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소셜벤처 종사자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의 조직문화 사례를 듣는 ‘조직문화 201’ 강의를 듣고 있다. 해당 강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수도권 소셜벤처육성프로그램 중 하나며 루트임팩트 주관으로 8월부터 12월까지 총 36회에 걸쳐 소셜벤처 종사자들에게 제공된다. [사진제공=루트임팩트]
한국판 킥스타트 키우자-될성부른 기업부터 찾아라바리스타가 구수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나면 ‘커피박’이라는 찌꺼기가 발생한다. 연간 16만톤에 달하는 커피찌꺼기가 그대로 버려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터(AC) 임팩트 스퀘어는 커피박으로 고형연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 포이엔(4EN)을 찾아냈다. 포이엔은 임팩트 스퀘어와 손잡고 친환경 비료 중심의 기존 사업영역을 친환경 연료까지 넓혔으며 지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화력발전 과정에서 쓰는 펠릿을 대체하는 고형연료를 선보인 포이엔은 국내에서는 농업분야 민간기업 최초로 탄소배출권 승인을 따내면서 소셜벤처로 거듭났다. 이는 포이엔의 발전 가능성을 포착한 임팩트 스퀘어는 물론 미래 가능성에 투자를 집행한 임팩트펀드(신한대체운용), SK그룹이 함께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이처럼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이른바 소셜벤처를 키워내는 임팩트투자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정부가 도입한 ‘사회적기업인증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기업들의 경우 수익모델이 상대적으로 약해 재정지원 없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물론 소셜벤처도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이후 비즈니스 모델만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수익성도 함께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각각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배후 시장으로 삼아 소셜벤처의 매출을 급속도로 늘리며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우 아직까지 주도국이 없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유리하다는 점도 임팩트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현명 임팩트 스퀘어 대표는 “선진국의 사회문제는 이미 많은 조직들이 매달렸던 만큼 현재 남은 것은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했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소셜벤처 태동기를 2016~2017년께로 잡고 있다. 벤처도, 사회적기업도 아니기에 외면받았던 소셜벤처들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신성장동력으로 주목 받으면서 단기간 내 많은 소셜벤처가 탄생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모태펀드와 금융위원회의 성장사다리펀드, 크게 이 두 갈래로 유입되는 소셜벤처 지원자금은 연간 1,800억원(2018년 기준) 수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는 1,000억원 정도가 풀린 만큼 연말께 2,000억원 가량이 ‘임팩트투자’라는 이름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앞으로 중기부는 임팩트펀드 1,000억원을 추가로 조성해 2022년까지 누적 5,000억원 규모까지 늘리고,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자도 2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다만 임팩트투자가 활성화된 서구에 비해 정부의 정책자금이 펀드를 채우는 주된 자금이라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록펠러재단과 JP모건의 지원으로 탄생한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의 보고서에 따르면, 임팩트투자자 가운데 64%가 자산운용사 등에 속한 펀드매니저이며 이들 가운데 13%는 비영리를 목적으로 한 기관에 속해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소셜벤처의 자금줄로 나선 임팩트 투자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기업들을 선택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글로벌로 통용되는 국제연맹(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자체적인 투자 기준을 준용해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소셜밸류인덱스(SVI)’나 SK그룹서 기업 성과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한 ‘사회성과인센티브(SPC)’ 등이 단적인 예다. 재무제표나 매출액 같은 정량평가로는 의미 있는 소셜벤처 가치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한상엽 소풍(sopoong) 대표는 “국내 소셜벤처의 역사가 짧을 뿐만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 적은 만큼 국내에선 정성 평가를 위주로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개별기업마다 커스터마이징한 기준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판단한다’고 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명확한 기준이 잡혀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소풍의 경우엔 명확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기업 목표가 정관 2조(목적)에 포함되었는지, 기업 내부에 소셜 임팩트를 판단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 성과를 공공에 알리기 위한 리포트 작성이 이뤄지는지 등을 필수조건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 규모를 불리는 것 외에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제2 벤처붐’을 위해 자금과 지원기관 확충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듯이 소셜벤처 분야 역시 튼실한 인프라를 다지겠다는 것이 중기부의 목표다.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이라는 원칙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8월말 발표된 ‘소셜벤처 육성 지원계획’에서 밝혔듯 중기부는 기술보증기금과 카우앤독, 루트임팩트, 임팩트스퀘어,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9개 기관과 손을 잡고 실태조사와 육성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수년 전부터 서울 성수동의 서울숲 인근에 모여있는 소셜벤처 기업과 중간지원 조직들이 자생적으로 협업을 진행해왔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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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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