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앞으로 2년 간 예산 싸움을 멈추는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 뮬러 특검 하원 증언과 “너희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 발언 파문으로 백악관과 민주당이 사사건건 팽팽하게 맞서는 워싱턴의 한 코너에서 조용히, 그러나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정치 협상의 결과다.
22일 오후, 트럼프가 먼저 의회 지도부와 “2년 예산안 및 부채 한도에 관한 타협이 이루어진 것을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고 트윗했고 이어 펠로시와 척 슈머 상원 민주당 대표도 공동성명을 통해 초당적 합의를 확인하고 “국가안보는 물론 건강, 재정 안정, 미국인의 웰빙 등 중산층의 우선과제에 대한 투자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앞으로 2년간 대폭 삭감에 직면해 있는 연방정부 지출을 오히려 늘리는 한편 부채 한도 적용을 2년 후인 2021년 7월31일까지 유예시키기로 했다.
쉽게 말해 워싱턴은 최소한 2년은 재정위기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부채 한도 유예로 국가가 채무 불이행, 디폴트 사태에 처할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예산 증액으로 주요기관들의 업무를 마비시킬 수 있는 대규모 지출 삭감의 칼날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예산 싸움으로 정부가 셧다운 될 가능성도 대폭 낮추어졌다.
대선을 앞두고 양당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합의 소식에 많은 의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쉰 이유다.
예산안 규모는 금년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2020 회계연도에 1조3,700억 달러, 2021 회계연도에 1조 3,750억 달러로 향후 2년간 3,200억 달러가 늘어난다. 만약 합의를 못 이루었다면 2011년 제정된 예산통제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1,250억 달러 지출삭감을 당하게 됐을 것이다.
예산 협상에서 민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은 국방 지출과 비국방 지출의 동등한 증액이었다. 상당부분 관철되었다. 첫해 비국방 국내 예산 6,390억 달러는 민주당이 원한 만큼은 아니어도 공화당 제안보다는 상당히 늘어난 액수다. 7,380억 달러의 국방예산 역시 공화당이 원한 증액엔 못 미쳤으나 민주당 제안보다는 높은 책정이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타협’이었다.
이번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를 대표하는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과 펠로시 의장 간의 여러 차례 회담 후 22일 오후 타결되었다. 마지막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므누신-펠로시-슈머-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대표-케빈 맥카시 하원 공화당 대표가 참여한 컨퍼런스 콜.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던 펠로시가 항공편 지연으로 이코노미 좌석에서 3시간 비행 내내 전화하는 모습이 트위터로 중계되기도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국내예산과 국방예산 증액을 얻어냈고 백악관은 국경장벽 예산 배정의 재량권을 사실상 확보하면서 제각기 ‘승리’를 주장하지만 모든 의원들이 다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화당 극우 보수진영의 분노가 의사당 안팎에서 폭발하고 있다. 일부 티파티 의원들은 “나라의 재정 미래에 대한 사보타지”라고 반발하고 재정보수단체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는 “역사상 최악의 예산 합의”라고 혹평했다.
‘대선 후보’ 트럼프는 8년 내 연방부채를 완전히 갚아버리겠다고 장담했지만 “대통령 트럼프는 마치 적자가 전혀 중요치 않은 것처럼 통치해왔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한다. 트럼프 취임 당시 19조 달러였던 정부 부채는 현재 22조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매코널은 트럼프에게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선거에서 진 정치가는 없다”라고 조언했다고 전한 워싱턴포스트는 ‘차세대보다 차기선거를 더 걱정하는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 대표의 사고방식’에서 재정적자에 대한 공화당의 웅변적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 “공화당은 민주당 대통령에게만 책임 있는 재정을 요구하는가”라는 자성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사실 트럼프 자신은 국가 부채나 적자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집권초기 참모들이 부채급증 예상 차트를 보여주자 “(그땐) 난 여기에 없을 거야”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퓨센터 조사에 의하면 적자해소를 위해 복지예산 삭감을 지지하는 공화당 응답자도 15%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적자해소 무관심과 유권자들의 지출삭감 반대라는 상황이 공화당의 대규모 지출인상 예산안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CNN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티파티 공화당 의회가 국가 디폴트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로 통과시켰던 예산 통제법이 이번 합의로 사실상 무효화되었음을 지적하면서 2019년 7월22일은 ‘티파티가 죽은 날’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합의안은 신속히 처리되어 8월 여름 휴회 전 상하원 통과와 대통령 서명을 마칠 것으로 기대된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비롯한 장애들도 예상되지만 정작 가장 큰 변수는 따로 있다. 대통령의 ‘변덕’이다. ‘극우파의 역풍에 마음 바꿔 협상을 무산시킨 전력’이 있는 트럼프가 이번엔 민주당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재무장관과 자당 지도부를 배신하지 않을지…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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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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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전에서 오바마의 재정적자를 강하게 비난하던 트럼프가 오바마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네. 역시 직접 해보니까 쉽지 않지? 능력도 없는 인물들이 권력욕만 있어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