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사탕 같은 맛 독과 같은 작용’
한국일보에 실린 캘리포니아 보건국의 청소년 전자담배 흡연 폐해를 알리는 풀 페이지 공익광고 문구다. 앳된 남학생이 전자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자니 학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철렁하고 답답하다.
몇 일 전에는 전자담배업계 거인으로 불리는 ‘줄’(Juul)의 최고 경영자 케빈 번즈가 느닷없이 학부모들에게 사과를 했다. CN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아이들이 전자담배를 흡연하는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다. 전자담배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데…”라며 “16세 아이를 둔 부모로서 학부모들의 걱정하는 마음에 공감 한다”고 밝혔다. 2015년 출시된 전자담배 ‘줄’은 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한다.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달콤하고 과일향이 나는 제품을 내놓아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매력적이고 젊은 모델까지 기용해 마케팅을 펼쳤다. 10대들을 주 타겟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나서 사과를 하니 ’병 주고 약 주자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주 보건국에서 소수계 언론에 수시로 전면 광고를 내고 최대 전자담배 업체 경영자가 학부모에게 고개를 숙이는 제스처까지 취할 정도라면 10대들의 전자담배 흡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그 현장을 목격했다. 지금은 전학을 했지만 지난 해까지 작은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매일 아침 라이드를 해주었는데 학교 근처 구석진 곳에서는 거의 매일 몇 몇 아이들이 모여 전자담배를 피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률은 고공행진이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고등학생의 약 21%, 즉 5명 중 1명이 전자담배를 피운다. 특히 2017~2018년 사이 이들의 흡연률은 78%나 치솟았다. 연방당국이 10대의 전자담배 흡연을 ‘전염병’ 수준이라고 진단할 만하다.
연방 통계에서는 고등학생들의 흡연률이 21%로 나왔지만 실제는 이 보다 더 수치가 높을 것이라는 게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콜로라도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45%의 학생들이 전자담배를 흡입해본 경험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서는 12학년생 4명중 한 명은 매일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인을 비롯한 아태계 청소년들의 흡연률이 어느 인종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교생들의 전자담배 흡연률이 치솟고 있지만 학교에서의 단속은 쉽지 않다. 한 한인 교장은 “USB 정도로 사이즈가 너무 작아 아이들이 마음먹고 숨기면 적발하기 힘들다”며 “신발 안에 숨기는 학생들도 자주 보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학교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플라이센스라는 탐지기까지 설치했다”고 덧붙였다.
왜 청소년들이 전자담배에 빠지게 될까. 한인 교장은 “10대 때는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아무래도 피어프레셔를 받게 된다”며 “여기다 학업 스트레스를 푼다는 생각으로 손을 대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만큼 해롭지 않다’는 잘못된 정보도 10대 흡연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하지만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담배처럼 니코틴이 함유되어 있으며 일부 제품은 니코틴 농도가 더 높다. 전자담배 연기에는 납이나 크롬, 망간 같은 유독성 금속물질이 포함돼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10대 때 전자담배를 피우면 성인이 돼서 일반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7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학생들의 전자담배 흡연이 급증하면서 한인 학부모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인 학부모들이 전자담배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생각으로 눈여겨 볼 포인트가 있는데 예를 들어 아이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달콤한 향기가 나거나. 이상한 느낌의 USB를 갖고 있거나, 평소보다 잦은 갈증을 호소한다면 전자담배 흡연을 의심할 만한 신호로 생각해야 한다.
아직 전자담배를 접하지 않더라도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친구나 주변 학생들이 전자담배를 흡연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지, 혹시 흡연을 권유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이가 전자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윽박지르고 비난하는 것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이런 행동으로 부터 멀어지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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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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