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휴가는 대부분 여름에 떠난다. 휴가만이 아니라 조직체들의 웬만한 중요한 모임들 역시 거의 여름에 모인다. 그 이유들은 다양하다. 가장 확실한 이유로서, 자녀들의 긴 방학이 여름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돌보는 일에서 벗어난 나 같은 연배의 사람들은 무관하겠으나, 아이 키우고 있는 젊은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낮 시간의 길이 때문이다. 요사이는 9시가 되었는데도 햇빛이 풍성히 남아있다. 낮이 짧으면 이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동하다가 일찍 숙소에 들어가도 밤이 너무 길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다. 대도시를 여행하면 그래도 좀 갈 데가 있으나 시골길을 여행할 때 밤이 길면 정말 지루하다.
나도 지난 6월 한 달 동안 두 번의 장거리여행을 다녀왔다. 첫 번째 여행은 가족휴가로서 아들이 있는 샌디에이고에 차로 다녀왔다. 가족끼리 있으면 차로 가는 긴 여행도 지루하지 않다.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다. 대부분 시시껄렁한 내용이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에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기에 어떤 얘기를 나눠도 좋다. 육체적으로는 힘들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많은 충전이 된 휴가였다.
지난주엔 교단 총회에 다녀왔다. 몇 년 전 새롭게 들어간 교단이어서 그 자리만 가면 아직도 새롭고 좋다. 만나는 얼굴들, 예배와 회의의 진행 방식, 먹는 음식들, 또 나누는 대화들까지 다 새롭다. 내겐 다들 새 얼굴들이니 기회가 올 때마다 나를 소개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녹음기라도 틀어놓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 총회는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렸다. 오래 전 한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왔던 곳이다. 습한데다 날씨가 무더웠다. 현지인들은 이 정도는 나름 시원하다는데도 캘리포니아에서 간 우리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총회가 열린 호텔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숙소에서 회의장소까지 가는 데만 도보로 20분 이상이 걸렸다. 그럼에도 참 좋은 모임이었다. 무엇보다도 예배와 성찬식이 좋았다. 한국어 중심의 우리의 예배와는 뭔가 다른 다이나믹스가 있었다. 정해진 주제에 일관되게 천착하는 모습이며, 쉽게 오버하지 않고 나름 적절한 절제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흔적들, 그와 함께 밀려오는 진한 감동과 눈물들, 이 모든 게 다 아, 예배란 이런 거야, 라고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출발이 연기되었단다. 여행할 때 제일 짜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애써 잘 받아들이는 날 보며 이미 미국인 다 된 내 모습을 본다. 비행장 대합실에서 같이 대기 중인 다른 이들도 각자 알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 절반은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전화기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다들 열심히 그 조그만 기계와 내통중이다.
언제부턴가 비행기 대합실의 대기를 즐기게 되었다. 여유의 미학이랄까. 내 비행기가 도착해야만 나도 이곳을 떠날 수 있다. 내 맘대로 더 빨리 오게 더 빨리 가게 할 수 없다. 수동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 주어진 여유를 즐기는 길밖에 없다. 책 읽을 시간이어서 좋고, 랩탑 꺼내어 글 쓰는 작업을 해서 좋고, 그것도 아니면 마냥 졸아도 그만이고. 내가 언제 이토록 여유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다.
교단에서 만난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얼굴에서 이와 비슷한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목회란 그 담당자들의 심신을 지치게 하는 특성을 지닌, 아주 독특한 직업이다. 미국 목회자들이라고 다른 건 아니다. 총회에서 마주친 그들의 얼굴에서 일시적 해방감과 평안을 볼 수 있었다. 옛 동료들을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들과, 목회자 아빠와 함께 사는 곳을 탈출해 온 사모와 자녀들의 명랑한 표정들이 그랬다. 그들도 이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또 다시 영적ㆍ현실적 씨름을 시작해야 한다. 잘 쉬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일터로 돌아가 잘 일해야 한다. 이런 고전적 창조섭리에 잘 순응하는 것이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또 하나의 길임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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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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