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 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아무리 그 분야에서 잘 뛰고 잘 날아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뜻의 말이다. 오래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란 영화다. 영국 깡촌 출신인 엘리엇 소년의 꿈은 발레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가 본격적인 발레리스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오디션 자리에서 춤을 춘 후 심사관의 질문에 그가 한 말이 다. “난 춤을 출 때 가장 자유로워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쓴 에서 이런 말을 한다.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할까, 잘하는 일을 할까? 어떤 일을 좋아하면 잘할 가능성이 높고, 잘하면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둘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특별히 못하는 일은 아니지만 전혀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상황이 가져다주는 고뇌와 갈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뛰도록 좋아하는 일이건만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서 힘들어해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이 말에 의하면, 춤출 때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빌리는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사실 이 둘이 일치되는 행운을 접한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과거엔 이 행운을 소유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어릴 때부터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싶었다. 미술가 아니면 음악가, 그것도 아니면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 부모들이 다 그랬듯, 내 부모도 도시락 싸들고 반대하셨다. 그건 취미로 해라, 배고플 것이다, 결혼해 자식 낳을 것 아니냐, 넌 가장으로서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해, 그래서 이 길은 안 돼. 한참 후에야 이 말이 얼마나 진리인지 깨달았건만, 적어도 그 당시에 난 그런 내 부모를 자식 속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몰인정한 부모로 여겼다.
그렇다면 이제 묻는다. 난 지금 행복한가? 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가? 또 잘하는 일을 갈수록 더 좋아하고 있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직업은 목사다. 케빈 벤후저의 에서 “목회자는 그 지역의 신학자이다”라고 말한다. 목회자는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 안에서 풀어나가는, 그 지역사람들의 영적ㆍ정신적 아이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위치를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목회직을 일단은 좋아해야 하는데, 난 아직까진 이 직책을 감당하는 게 참 좋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풀어 설명하는 일이 좋다. 설교하는 게 좋다.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자리 역시 좋다. 그것을 준비하는 자리는 그래서 더더욱 좋다. 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교 다닐 때 한 은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제군들, 목사는 설교하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후에 목사가 된 후 이 말을 동료목사한테 했더니, 그 왈, “목사님, 근데요, 목사는 설교하기를 즐거워해야 하는데, 교인들이 그 목사 설교 듣기를 안 즐거워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이 말을 듣고 서로 박장대소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아무튼 목사는 일단 설교나 성경 가르치기를 즐겨야 한다. 잘하는 건 그다음 문제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때 예술가가 안 되고 목사가 되길 참 잘했다. 다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둘로 나뉠 것이다. 현재 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과 생계 문제가 다 끝나고 은퇴하신 분이다. 오늘의 이 담론이 독자께서 처한 위치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재미없어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일로 들어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하기 싫고 힘들어도 먹고살기 위해 그 자리를 계속 고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속상하지만 은퇴할 때까지 인내로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은퇴자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혹시 은퇴했는가? 그렇다면 정말 하고 싶었던 신나는 일을 다시 시도해보라. 먹고사는 문제 아니니 잘 못해도 괜찮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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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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