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신나는 도전’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즐거운 동아리활동과 축제 등 낭만 넘치는 캠퍼스를 떠올리지만 낭만은커녕 당장 먹고 자는 현실적 문제에 가로막혀 낙담하고 좌절하는 대학생들이 주변에는 꽤나 많다.
‘대학생 5명중 1명 홈리스 경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국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최고 강국인 미국의 민낯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생 중 지난 1년 새 노숙 경험을 한 학생이 20%나 된다.
커뮤니티칼리지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위스콘신 호프 연구소가 24개주 70개 커뮤니티칼리지 3만3,0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분의 2가 언제 굶을지 모르는 ‘식량 불안’을 걱정했으며 절반가량은 렌트나 공공요금을 지불할 여유가 없어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주거 불안’을 겪는다.
가난한 대학생들 모습은 애처롭고 안타깝다. 뉴욕 브롱스 리먼 칼리지에 재학하는 한 학생은 매일 아침 근사한 브렉퍼스트를 상상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할렘가 홈리스셸터에서 살며 수업을 듣는 그는 두 개의 파트타임 일을 뛰고 있지만 학자금 등에 쪼들려 일주일에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은 단 15달러다.
아침 식사는 언감생심이다. “너무 배고파서 정신이 흐려지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거리를 떠도는 내 자신을 발견해요. 제가 발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롱아일랜드 스토니브룩 대학에 다니는 또 다른 학생도 사정은 마찬가지. 생활비가 부족해 점심을 자주 건너뛰는 그는 배고픔을 견디려 점심시간에 낮잠을 청한다. “공짜 음식을 찾아 헤매는 것도 지쳐서 차라리 낮잠을 자요.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으니까요.”
배고픔을 참기 위한 낮잠을 ‘빈곤 낮잠’(poverty naps)이라고 부른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빈곤 낮잠’으로 버티는 학생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냉수를 들이키며 허기를 달랬다”는 한국의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이야기가 21세기 미국 땅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대학들이 식량 불안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역부족이지만 다행이다. 전체 학생의 10%가량이 ‘식량 불안’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된 조지아대학의 경우 1년간 급식을 무상 제공하는 스칼라십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며 이들을 위한 캠퍼스 식품 저장고도 마련했다. 오리건 주립대의 경우 한 학기에 약 2만명의 식사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의 기아보다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기 힘든 ‘홈리스’가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렌트비가 너무 비싼 캘리포니아의 경우 270만명에 달하는 커뮤니티칼리지와 주립대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의 주거지를 찾아주는 것은 캠퍼스의 기아 퇴치보다 더 큰 도전”이라고 말한다. 차에서, 길에서 쪽잠을 청하며 고군분투하는 홈리스 대학생 수는 증가일로다. 올 초 발표된 연방자료에 따르면 2016-17학년 전국 공립학교의 노숙자 학생 수는 10년전에 비해 70%나 치솟은 135만 5,821명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2014-15학년과 2016-17학년 사이 20개주에서 홈리스 학생 수는 10% 이상 늘었다.
학교 도서관 근처 차 안에서 생활하는 캘리포니아의 한 학생은 “대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장애물은 주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44개주 홈리스 대학생들의 2016-17학년도 졸업률은 최저 45%에서 최고 88%로 들쭉날쭉 이다. 전국 평균 졸업률은 64%다.
이제 홈리스 대학생은 캠퍼스나 교육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학교와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개빈 뉴섬 주지사가 최근 홈리스 대학생 구제를 위해 1,000만달러의 주정부 기금을 제안한 것은 반갑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부디 신속하게 시행되기를 기원한다.
각 지자체 차원에서도 더 포괄적인 노숙자 학생 지원 대책이 속히 나와야 한다. 대학생들은 미래의 동량이고 주거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이다. 이들이 더 이상 갈 곳을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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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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